독일음악 명문가 바그너 집안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7.04.12 01:00

‘히틀러와의 악수’란 악몽이…

바이로이트 극장을 찾은 히틀러(오른쪽)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며느리인 비니프레트 바그너가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년 ‘파르지팔’의 한국 초연을 위해 방한한 독일의 29세 여성 연출가 카타리나 바그너(Katharina Wagner)는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증손녀다. 바그너 가문은 4대에 걸쳐 작곡가와 연출가를 두루 배출한 독일 음악계의 명문(名門)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 한 편에는 히틀러와 세계 2차 대전의 악몽이 도사리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 자신이 반(反)유대주의와 게르만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토로하며 ‘불씨’를 남겼다. 독일 신화와 전설에 바탕을 둔 그의 작품에도 이 같은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히틀러(1889~1945)가 태어나기 6년 전에 숨을 거둔 바그너에게 ‘나치즘’의 혐의까지 두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가 많다.

본격적으로 악몽이 시작된 건, 아들 세대부터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들 지크프리트 바그너(Siegfried·1869~1930) 역시 오페라 작곡가였으며, 아버지의 작품만을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을 22년간 지냈다. 지크프리트가 타계한 뒤, 그의 아내인 비니프레트 바그너(Winifred·1897~1980)가 모든 실권을 이어받았다.

비니프레트는 영국인이었지만 정작 히틀러를 만난 뒤,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비니프레트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유대인과 반(反) 나치 예술가를 추방하는 데 동조했고, 바이로이트는 사실상 나치의 ‘음악 전당 대회’나 다름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전범 재판에서 비니프레트는 바이로이트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금지 당했다.

전후(戰後)에는 지크프리트의 두 아들이자 리하르트 바그너의 손자인 빌란트(1917~66)와 볼프강(Wolfgang·87)이 축제 예술 감독을 이어받았다. 이들 형제는 나치의 색채를 없애고 조부(祖父)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앞장섰다. 어머니가 뿌린 ‘재앙’을 아들 세대가 걷어내기 위해 애쓴 셈이다. 형 빌란트가 타계한 뒤에는 동생 볼프강이 바이로이트 음악제를 40여 년째 책임지고 있으며, 볼프강의 딸인 카타리나 바그너도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