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도시 사이… 그 남자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1.03.07 23:36

서용선 개인展 '시선의 정치'

"빵!" 총소리가 났다. 막 지하철에서 내린 남자가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이내 바닥에 피가 흥건히 퍼져갔다. 2003년 여름 체코 프라하 중앙역. 여행 중이던 한국인 화가는 경련을 일으키는 남자를 바라보며 멈칫했다.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호텔방으로 돌아온 화가는 낮의 충격을 바로 스케치했다. 프라하는 아름다운 도시 경관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지만 난생처음 총 맞은 사람을 본 작가에게는 이 장면이 가장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서용선(60) 개인전 '시선의 정치'가 9일부터 내달 10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프라하 총격'(2003)을 비롯해 뉴욕, 베를린, 멜버른 등 외국의 도시에서 받은 인상을 표현한 작품 40여점이 나왔다. 단종(端宗)의 비극적 삶, 6·25 등 역사적 사건을 그린 작품과 서울·베이징 등을 소재로 한 도시 연작을 발표해 온 작가는 "예전엔 청계천고가도로 등 도시 형성 과정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번엔 해외의 도시들과 서울을 비교하는 시선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뉴욕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뉴욕을 그려보고 싶었다.”서용선의 2011년작‘지하철 정거장 2’. /학고재 갤러리 제공
뉴욕의 인상은 오래된 지하철역의 철골 구조다. "뉴욕 지하철에서는 '우르릉' 쇳소리가 납니다. 서울보다 훨씬 시끄럽고 지저분하지만 뉴욕이란 도시, 미국이란 시스템의 느낌·구조·실질적 기능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것 같아요. 20년 전부터 뉴욕에 갈 때마다 지하철을 스케치했죠. 이번엔 아주 작정하고 몇 달 머물면서 작업했어요."

베를린은 숨막히도록 갑갑한 인상이다. 작품 '두 사람'(2003)은 사람이 사회 제도에 눌려 있는 것만 같은 옛 동독지역의 느낌을 녹색 배경에 늪처럼 파묻혀 가는 인물들을 통해 표현했다. 호주 멜버른에서 그린 '케이크 고르는 남자'(2010) 등에서는 중국인들이 많은 멜버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빛깔을 화폭에 담아내려 애썼다. 종이에 그린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이번 전시작의 특징. 서용선은 "타지에서 캔버스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항공운송 때문에 무게를 줄여야 했다"고 했다.

미아리 공동묘지 부근에서 자란 서용선은 무척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군 제대 직후 중장비 기사 자격증을 따고 중동에 갈 요량으로 신문 광고를 훑어보다가 우연히 이중섭의 삶에 대한 기사를 보고 감명받아 24세 때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서용선은 1986년 모교 교수로 임용됐지만 2008년 정년을 8년 남겨두고 "그림에 집중하고 싶다"며 교수직을 내놓았다.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대학을 쉽게 가기 위한 수단으로 미술을 택한 것이 아닌가'라는 자격지심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문화적 결핍이 많아서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이 다 불안한 것만 같다"고 털어놓았다. (02)720-1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