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21 12:52
[최명영]
개인전 ‘Works on Paper 1976-2022’
28일부터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
종이 작업만 총망라한 최초의 전시
“캔버스에서 벗어난 휴식과도 같은 작업들”
반백 년 예술 세계 품은 드로잉 70여 점





최명영(82)의 화실에는 책상이 많다. 그중에서도 볕이 제일 잘 드는 창가에 자리한 나직한 책상이 아마 그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상이리라. 그 위로 채 완성되지 않은 종이 작업 수 장 옆으로 화구들이 언제든 쓰임을 기다리듯 각자 제자리를 찾아 정갈히 놓여있다. 맞은편 서재에 빼곡히 꽂힌 책들은 무엇이고 하니, 연대별로 분류된 사진 앨범과 기록물, 전람회 화집 등 지난 반 백 년의 그의 족적이 감탄스러우리만큼 말쑥하게 정리돼 있다. 이처럼 작업실 곳곳에서는 작가의 성품이 엿보이는데, 이러한 깔끔하고 정결한 성정이 이끈 것일까. 최명영의 평생화두는 다름 아닌 ‘조건’이었다. 이 창작의 산실(産室)에서 최명영은 회화를 회화로, 평면을 평면으로써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을 완성하는 데 일평생을 몰두했다. ‘평면조건’은 작가의 대표작 명제이자 작업 주제다.
마치 산술적 공식처럼 꼭 떨어지는 값이 존재할 것 같이 들리는 이 조건은 2차원 평면의 필요 요건이자, 그 성립 요건을 통해 회화적 리얼리티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물음과 같다. 송곳으로 종이에 천공(穿孔)을 내거나 손가락 끝에 물감을 발라 지문 찍기를 거듭하는 식의 끊임없는 반복은 최명영의 작업 세계를 완성하는 중추적 요소 중 하나다. 화려하거나 과시적이지 않은 이 수행적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물감과 질료의 정신화를 이뤄내는 것으로, 개성을 제거한 단일 색채와 질감만으로 회화, 즉 평면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규명하고자 함이다. 작가는 이를 평면조건이라 명명하고 1970년대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그에 관한 탐구를 지속해 오고 있다.



이러한 최명영의 예술 세계가 기존의 캔버스가 아닌, 종이 위에 심도 있게 구현된다. ‘최명영 Works on Paper 1976-2022’가 4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종이 작업만을 총망라해 선보이는 최초의 자리로, 70여 점이 내걸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다가오는 가을, 유럽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국내에서는 마지막으로 마련되는 전시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이들 종이 작업은 작가가 평생의 화업에 걸쳐 캔버스 작업과 함께 쉼 없이 병행해 온 일기(日記)와도 같은 드로잉으로, 그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예술 세계가 진솔하고도 자연스럽게 담겨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애초에 누구에게 내보이려고 제작한 것이 아닌, 캔버스에서 벗어난 일종의 휴식과도 같이 작업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종이를 바탕지로 삼고 있으나, 1970년대부터 2022년에 이르기까지 지난 반백 년의 화업이 오롯이 응축돼 있다는 점에서 그에 내재된 예술 세계는 캔버스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다음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지난 3월 말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최명영의 스튜디오를 찾아 나눈 대화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도심에 작업실이 위치해 있으나, 내부로 들어오면 시끄러운 바깥은 잊게 하는 망중한을 선사해 주는 듯합니다. 이곳에 터를 잡으신 지 얼마나 됐는지요.
1964년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줄곧 홍익대 부근에서 머물렀어요. 본래는 서교동 근방에 있다가 집을 한강 변으로 옮긴 후에는 좀 더 지근거리에 작업실을 얻고자 해서 2002년 이곳으로 왔죠. 욕심 같아서는 교외로 나가 더 널찍한 곳에서 그리고야 싶지. 그래도 집에서 10분 거리니 오가는 데 부담이 없어 좋아요. 이곳은 화실이기도 하지만 저만의 음악 감상실이기도 합니다. 작업할 때면 꼭 음악을 틀어놓는데 마음이 그렇게 풍족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오페라를 즐겨 듣는데, 그중에서도 필립 글라스(Philip Glass)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는 가장 아끼는 음반이에요.
─‘평면조건’은 1970년대 중반 즈음부터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는 선생님의 화두입니다. 이는 회화라는 평면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주제가 어디서 어떻게 기인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조건이라고 부르니 어떤 제약을 가하는 것 같이 들릴 수도 있겠어요. 이름이 그럴 뿐이지, 평면이란 무엇이며, 평면을 이루는 제반 여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명제입니다. 1960년 홍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해 학교에 다니는데, 당시에는 사과나 화병 등 정물을 그리는 걸 배울 때였죠. 처음에는 열심히 그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왜 사과를 그리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점차 그림 자체에 대한 회의랄까요. 평면 위에 정물을 그리는 행위에 지쳐 그림을 포기할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샤임 수틴(Chaïm Soutine·1893~1943)의 화집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단순 묘사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쏟아내듯이 강렬하게 표현한 그의 회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상을 똑같이 묘사하지 않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게 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때부터 평면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가슴에 품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 대학 재학 시절 동기들과 함께 기하추상회화 그룹 ‘오리진(Origin)’을 창설하거나 1960년대 후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하는 등의 활동이 당시 화단의 주류를 거스르고 새로움을 갈구하고자 하는 모색의 일환이었던 거네요.
그렇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 평면 그리고 그를 이루는 질료와 작업 과정에서의 작가의 개입 등을 고민하며 당대 한국 미술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조형을 탐색하고자 했어요. 이를테면, 아방가르드협회를 통해 한국에 실험적인 전람회가 처음 소개되다시피 했는데, 당시 협회원으로는 화가, 조각가, 비평가 등 당시 한국 화단을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했었죠. 특히 1970년 열린 ‘제1회 AG’전(展)에 이일 선생께서 ‘확장과 환원의 역학’이란 주제를 내세웠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평면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재 방식’을 찾고자 하는 저의 작업 화두는 이러한 경험과 배경에서 비롯된 셈이죠.



─선생님은 ‘평면조건’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50년에 걸쳐 지속적인 변화를 꾀해 오셨습니다. 캔버스 위에 손가락 끝으로 물감의 흔적으로 반복하거나 종이를 송곳 따위로 뚫어 표면에 생채기를 내는 방식 등을 통해 평면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셨어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평면에 대한 회의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평면조건’ 시리즈가 존재할 수 있었듯이 저는 평면에 제 자신을 어떻게 투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더욱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시도해 본 것 중 하나가 평면 위에다가 질료를 손으로 계속 문질러보는 거였어요. 물감을 화면 표면에 유착시키는 행위를 반복하는 식이었죠. 때로는 롤러를 사용하기도 했어요. 롤러로 물감을 사방으로 밀어내는 작업인데, 별다른 이미지가 없는 화면이었죠. 그러나 저는 오히려 이로써 물질을 정신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즈음해서는 한지 작업을 새로이 시작했어요. 한지에 먹물을 침투해 스며들게 하고 뒷장에서 송곳으로 종이를 찔러 구멍을 뚫는 건데, 앞장을 보면 표면이 오돌토돌 돌출돼 물질감이 형성되는 거였죠.



─이번 개인전 ‘최명영 Works on Paper 1976-2022’에서 선보이는 종이 작업들에도 캔버스에 적용하신 작업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평면임에도 촉각성이 도드라지는 동시에 신체적 움직임과 작업의 수행적 면모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듯 평면조건을 실현하기 위한 이들 방법론적 접근이 결국은 반복성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위의 반복은 물질의 정신화를 실현하기 위해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제 작업은 저라는 사람이 끊임없이 거듭 개입해 이뤄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달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잖습니까. 그들도 수천, 수만 번 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경지를 이뤄낸 거죠. 제 작업에서의 반복이란 끊임없이 종이를 뚫는다거나 롤러로 밀어내는 식인데, 그렇다고 매번 똑같은 것이 아닌, 할 때마다 달라지는 반복이랄까요. 바로 이 지점이 제 작업 세계에서 가장 주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물질이 정신적 차원으로 환원되기까지 그 과정에 저의 호흡이라든지 신체의 움직임이 궤를 같이하고 있는 거죠.
언젠가는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1980년 일본 무라마츠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롤러 작업 열댓 점만을 내걸었어요. 일견 비슷해 보이는 오프 화이트톤의 그림들을 죽 벽에 붙여놨었죠. 당시 일본에서 활동 중인 미술 평론가 조셉 러브(Joseph P. Love)가 전시장을 방문했는데, 롤러를 상하좌우로 반복해 밀어냄으로써 물질과 질료가 정신화되는 과정에 대해 제가 설명했더니 그분이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저 물질에 지나지 않다고 답하더군요. 그런 반응에 솔직히 좀 떨떠름하긴 했죠. 이틀 후 그분이 재방문했는데 여전히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기에 저와는 생각이 다른가보다 싶었어요. 그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우환 선생과 만났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이 선생 왈, 조셉 씨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라며, 서양 사람들은 정신화되는 것에 관해 이해하기 어려워한다고 설명해 주더군요. 그게 동서양의 차이구나 생각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종이 작업만을 선보입니다. 종이라고 하지만, 1970년대부터 2022년까지 지난 반백 년이 그대로 응축돼 있습니다. 드로잉은 애초에 누구에게 내보이려고 제작한 것이 아닌, 캔버스에서 벗어난 일종의 휴식과도 같이 작업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안에 내재된 예술 세계는 캔버스와 견주어도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들 종이 작업은 1970년대부터 지금껏 매일 이어오고 있는, 마치 숨을 쉬듯이, 하루를 살아가듯이, 소일거리와도 같이 지속해 오고 있는 제 일상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이 일기를 쓴다면 작가는 드로잉을 하는 거죠. 특별한 조형성을 의도하고 그린 것이 아니니 역으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종이 작업만을 모은 전시는 흔하지 않은데, 이번 전시가 제게는 참으로 반가운 기회이지요.
─종이 작업의 바탕지로 삼은 종이가 다양한데요. 방안지, 한지 등 여러 종이를 사용하시는데, 이들을 소재로 채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한지는 19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요. 양지(洋紙)와는 다르게 한지는 마치 종이가 숨을 쉬듯이 침투력이 좋고 온화하고 포근한 감성이 있지요. 그래서 그 특성을 십분 활용해 물감을 흡수시키고 송곳으로 뚫어보는 시도를 하게 됐습니다. 방안지는 그림을 그리는 용도는 아니지만, 규칙을 탈피하고자 실험적인 의도로 사용해 보기 시작했어요. 방안지는 칸칸이 구획이 나눠 있잖습니까. 신체성을 담아 질료를 접촉해 그 칸을 덮어내는 반복에 흥미를 느낍니다. 물론, 양지도 사용하고 있지만 한지에 비해 성질이 차갑고 흡수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또 그만의 매력이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종이를 꼽으라면 한지를 택하겠지만요.


─주로 흑, 백 등 무채색으로 화면을 채우시지만, 근작에서는 블루, 레드, 옐로 등 강렬한 원색도 종종 보입니다. 이들 색은 어디서 기인했는지요.
한지에 먹이 스미는 그 느낌이 좋아 먹, 즉 검은색을 즐겨 사용해 왔어요. 한지에 먹을 침투시키고 뒤에서 송곳으로 뚫어 앞면에 텍스처를 생성하는 과정을 따릅니다. 반면 캔버스에서는 백색을 쓰는 것이 좋더군요. 그렇다고 마냥 새하얀 빛이 아닌, 쉬 규정짓기 어려운 흰색을 사용해요. 제가 30대에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며 백자 파편을 모으곤 했는데, 파편들 제각기 색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무지 흥미로웠어요. 흰색이긴 한데, 그게 다 같은 흰색이 아니라 각각 미묘하게 다르더라고요. 여전히 백자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가끔은 빨강이나 노랑과 같은 색도 사용해 보는데, 컬러에 특정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제게 있어 색다른 시도로서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에 가깝습니다. 저는 색채란 성격적인 측면보다도 질료 그 자체에 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70여 점을 내보이시는데, 출품작 중에서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있다면 짚어주십시오.
한지에 송곳으로 뚫은 작품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방안지에 지문으로 물감을 찍은 작품은 제가 발표를 좀 아꼈어요. 손가락 끝으로 물감을 반복해 찍는, 즉 신체를 드리우는 행위가 담긴 작품으로서, 제게 의미가 남다릅니다. 제 삶의 흔적을 문자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방안지라는 약속되고 한정된 공간 위에 계속해서 저의 지문을 찍어 남긴 것이죠.
사실 제 그림이 쉽지는 않습니다. 형상이나 이미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색조도 덤덤하다 보니 감상하는 데 특기할 만한 특징을 들기 어렵다고들 하더군요. 그러나 가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감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비록 표정이 없는 담백한 그림일지라도 그 안에 침잠돼 있는 세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02)736-7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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