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비례의 완전한 아름다움… ‘무비(無比)’展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2.11.10 17:04

윤상렬·신수혁·김이수·아그네스 마틴·도널드 저드 5인전
30일까지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

 
견고한 형태와 안정적인 비례를 지닌 정사각형을 주제로 마련된 전시가 있다. 수평 혹은 수직, 정방형 혹은 장방형과 같이 선에서부터 비롯된 무한한 확장을 표현한 작가 5인이 모인 ‘무비(無比)’전(展)이 30일까지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작품 속에 흐르는 비례의 아름다움에 주목해 윤상렬, 신수혁, 김이수, 아그네스 마틴, 도널드 저드 등 작가 5인의 작품 40여 점을 모아 한자리에서 내보인다. 
 
윤상렬, SILENCE MA-20, 2022, Sharp pencil on paper, Digital printing on acrylic, 122x122cm. /더페이지갤러리
 
윤상렬은 샤프심을 소재로, 0.3mm의 정교하고도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긋고 그 화면의 도랑 사이에 잉크젯 안료를 안착시켜 완성해낸 특유의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로 다른 농담의 세밀한 선들이 셀 수 없을 만큼 촘촘히 자리한 그의 화면은 때론 거울처럼 보는 이를 투영하기도, 그 자체로 빛과 같이 빛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내 작업은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신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평면처럼 보이나 3차원의 공간, 더 나아가 건축적으로도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믿는다. 그림에서 이들 선은 그저 선이 아닌, 빛을 이뤘다고 생각하는데, 형상이 흡사 빛처럼 조밀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응축된 반입체적 작업이라고 부르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업은 진실과 거짓의 근원적 탐구자세로부터 기억 속 시공간의 잔상에서 시작된 개인적 극복 프로젝트의 징표다. 엄격한 질서로 레이어된 미세한 선의 변주는 보는 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정신적 공간으로 이끄는 듯하다.
 
신수혁, Critical Point No.2231, 2022, Oil on canvas, 130x130cm. /더페이지갤러리
 
신수혁은 인간과 장소, 사회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그 관계를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하는데, 이를 종횡으로 켜켜이 쌓고 지우고 그리고 또다시 채우는 선으로써 표현한다. 층층이 겹친 레이어를 통해 심연의 공간을 그려내며 빛과 흐름, 감성 등 비물질적 요소와 그 비가시적인 순간의 기록을 파란 빛깔로 치환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정방형 캔버스에 작업한 신작을 내보인다. 신수혁은 “정방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형태 중 가장 완벽한 모양으로, 위아래와 좌우가 뒤바뀔 수 있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는데, 즉 고정된 상이 아닌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했다. 붓질을 수없이 거듭해 완성하는 기존의 작업 방식과 달리 이번 신작은 비교적 신속하게 완성했다고. “쌓여서 나오는 색이 있는 반면, 한두 번 만에 내야 하는 색이 있죠. 이번 신작은 반사돼서 발색되는 색을 입고 있는데, 한마디로 빛의 느낌이 압축된 화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이수, Inframince-Landscape, 2021, Acrylic on Canvas, 162.2x112.1cm. /더페이지갤러리
 
끝도 없고 경계도 없는 경이의 풍경을 담고 있는 캔버스는 김이수의 작품이다. 감각적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미세한 차이를 반복해 꼭 신기루와 같이 아른거리는 듯한 형상의 모노톤 화면을 추구한다. 수평선을 연상하는 형태로 거듭 쌓여가는 수많은 색띠의 겹침과 그러데이션을 통해 감성의 미세한 층위를 나타낸다. 김이수는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한 줄씩 테이핑해가며 줄을 긋는데, 그야말로 시간이 집적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아그네스 마틴, Untitled #1, 1996, Acrylic and graphite on canvas, 152.4x152.4cm. /더페이지갤러리
 
이들 작가 3인 외에도 선의 예술가로 불리는 아그네스 마틴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마틴은 작업 초기 풍경, 정물 등 전통적인 회화를 그렸는데, 1960년대 이후 현실 너머의 정신적인 초월적 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미니멀리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정사각형 캔버스에 차분한 색상을 바탕으로 엄격한 선과 그리드가 특징인 마틴의 정사각형 화면은 그의 표현처럼 물체도 없고 방해도 없고 장애물도 없는 세상과 같다. 
 
도널드 저드, Untitled, 1985, Painted aluminum, 30x120x30cm. /더페이지갤러리
 
저드는 다양한 컬러의 공업재료를 사용해 회화와 조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특수한 오브제를 제시했다. 작가는 공간에서의 작품 배치와 전시 방법을 중시하며 오브제를 통해 공간을 새롭게 정의했는데, 그중에서도 사각형 구조로 된 그의 대표적인 오브제는 저드 고유의 조형 언어가 됐다고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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