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본 적 없어도… 별이 있다는 걸 믿어요

  • 이태훈 기자

입력 : 2018.04.26 01:03

[연극 리뷰] 달팽이의 별

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사건이 된다. 시청각 중복 장애인 남편 영찬과 척추장애인 아내 순호에겐 천장에 매달린 전등 갈아 끼우는 일이 그렇다. 키 작은 아내는 손이 안 닿고 남편은 전등이 안 보인다. 어둑한 무대 위, 부부는 전등을 갈아 보려 애쓰다 웃음을 터뜨린다. 아내를 목말 태우려다 웃고 우수수 떨어진 먼지에 재채기하다 또 웃는다.

서울 혜화동 선돌극장에서 공연 중인 '달팽이의 별'(연출 박용범)은 착하고 담백한 연극이다. 아내가 남편과 소통하는 방법은 남편 손 위에 자기 손가락으로 점자를 찍는 점화(點話). "내일 다시 해 보자"는 아내에게 남편은 "어두우면 불편하지 않으냐"고 걱정하며 묻는다. 그때 아내가 또 남편 손을 톡톡 두드린다. 점화로 전한 말이 무대 뒤 화면에 비친다. "어둠 속에선 당신이 더 잘 보니까 난 당신 옆에 찰싹 붙어 있으면 돼."

시청각 장애인 남편 영찬(홍성춘)과 척추장애인 아내 순호(조정민)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갈아 끼우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부부는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행복해 한다.
시청각 장애인 남편 영찬(홍성춘)과 척추장애인 아내 순호(조정민)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갈아 끼우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부부는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행복해 한다. /엠포 컴퍼니
부부 아랫집에는 열두 살 딸을 둔 부부 철수와 영희가 산다. 아빠는 습관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딸은 아빠를 보지 않으려 하며, 아내는 화를 낸다. 두 부부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엇갈리다 하나로 만날 때 철수와 영희 부부의 오래된 오해를 풀 실마리도 생겨난다.

영찬과 순호 부부는 스스로를 "달팽이별 우주인"이라고 부른다. 달팽이처럼 촉각에 의존하며 느릿느릿 살아가기 때문이다. 영찬 역의 배우 홍성춘은 의자에서 내려서는 동작, 가끔식 일그러지는 표정 등으로 시청각 중복 장애를 충실하게 표현한다. 짧게 끊어지는 웃음소리, 순진한 실수들로 객석에 잔잔한 웃음을 물결처럼 퍼뜨린다. 그 웃음이 이야기에 강약 리듬을 불어넣는다. 영찬이 지나가듯 말하는 대사엔 관객의 마음을 붙드는 힘이 있다. "사람의 눈, 귀, 가슴은 최면에 걸렸거나 강박에 사로잡혀 세계를 모른 채로 늙어간다"거나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별이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오래 남는다.

원작은 실제 장애인 부부 영찬·순호씨 이야기를 담은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2011년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공연은 내달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