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오르기 전 힘이 되는 건 바흐의 음악"

  • 최보윤 기자

입력 : 2017.09.01 03:02

['브로드웨이 42번가' 김석훈]

14년 만에 뮤지컬 무대 올라
국립극단 배우로 연기 시작해 TV사극 '홍길동'으로 스타덤
"벼락출세했다고 주위서 질시… 연기력으로 극복했지요"

"뜨내기가 갑자기 스타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뮤지컬 내용이 저랑 비슷해요. 다른게 있다면 저는 '벼락출세'에 대한 날 선 시선에 힘들었거든요. 속된 말로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녀석'이 덜컥 주연을 맡아버린 식이죠. '반짝 스타'로 끝날 거라는 질시도 많았고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제작자 줄리안 마쉬 역을 맡은 김석훈(45)은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었다. 최근 만난 그에게 주변의 질시를 어떻게 극복했냐 물으니 "연기력?"이라며 싱긋 웃었다. 2003년 '왕과 나' 이후 뮤지컬은 14년 만.

올해로 데뷔 20년 차인 배우 김석훈(45)은 '반듯하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1998년 드라마 '홍길동'으로 TV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렇다 할 스캔들 한 번 없는 '바른 생활 이미지'로 주연을 도맡아 했다. 김희선과 호흡을 맞추며 최고 시청률 52.7%를 기록한 드라마 '토마토'(1999)를 비롯해 '행복한 여자'(2007) '엄마'(2015) 등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데뷔 20년 차 배우 김석훈은 “훌륭한 길잡이를 만나 이 자리까지 올랐지만 아직 노래와 춤이 부족한 뮤지컬 신인 배우”라고 웃었다.
데뷔 20년 차 배우 김석훈은 “훌륭한 길잡이를 만나 이 자리까지 올랐지만 아직 노래와 춤이 부족한 뮤지컬 신인 배우”라고 웃었다. /고운호 기자
국립극단 소속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참신한 '얼굴'을 찾고 있던 정세호 PD 눈에 띄어 행운을 잡았다. "TV 주연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 실감도 못 했으면서 그때 욕심도 있었나 봐요. 방송 몇 주 전 민속촌에서 촬영하는데 사람들이 저만 빼고 다른 배우들한테 모여 웅성웅성하는 거예요. '쟨 뭐야?'라는 소리도 들려왔죠. 쭈그리고 앉아 정말 '난 뭔가?' 하고 생각했어요."

정세호 PD가 그를 다독였다. "첫 방송 나가면 달라질 거다. 난 너 믿는다." '예언'은 적중했다. 방송이 시작되자 촬영장마다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스타가 된다는 건 굉장히 신비한 일인 것 같아요. 신인 때 어느 정도 감이 없었느냐면, 편안하게 인터뷰하면 되는 줄 알고 슬리퍼를 신고 나갔거든요. 근데 이튿날 대문짝만 하게 나온 거예요. 연락이 어찌나 많이 오던지…."

이번 역을 맡으면서는 "주변 연출가님들 일상을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냉정했던 줄리안 마쉬도 코러스 걸인 페기 소여를 보며 무장해제 되잖아요. 극단 막내일 때 연극계 거목이신 임영웅 연출가님을 만났는데 무뚝뚝한 선생님이 저만 보면 피식 웃고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이번 제작사 대표님 얼굴도 계속 살피며 연기에 녹였죠. 공연 전날까지 흙빛이더라고요. 이젠 나아졌지만요. 하하!"

페기 소여를 맡은 오소연(오른쪽)과 줄리안 마쉬 역의 김석훈(왼쪽).
페기 소여를 맡은 오소연(오른쪽)과 줄리안 마쉬 역의 김석훈(왼쪽). /샘컴퍼니

연륜이 생겨서인지 말투에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그가 손사래를 쳤다. "말도 마세요. 무대에 오를 때 얼마나 떨리는데요. 관객을 직접 만난다는 신선한 떨림이 첫째고요. 생각이 많아진 건지 무대는 여전히 두려워요."

그럴 때마다 김석훈에게 힘을 주는 게 있다. 바흐의 음악이다. 2011년부터 4년간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한 그는 바흐의 작품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얼마 전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변희봉 선생님 편을 무척 감동하면서 봤어요. 변 선생님도 봉준호 감독을 만나 그렇게 화려하게 꽃피우셨잖아요.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 작품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잡은 거니까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10월 8일까지 공연된다.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