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총감독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거대 이벤트보다 내실"

  • 뉴시스

입력 : 2017.07.10 09:59

송승환 예술감독
"지난 올림픽 개·폐회식과 비교하면 이벤트보다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실 거예요."

내년 '2018 평창동계올림픽'(2월 9일~25일)은 1988년 '제24회 하계 올림픽' 이후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선수들의 경기만큼 개·폐회식으로 기억된다. 88올림픽의 굴렁쇠가 그렇다.

중국의 질서와 체계의 '끝판왕'을 보여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중문화 강국인 영국의 위세를 체감한 2012년 런던올림픽, 러시아 문화예술의 영감을 듬뿍 담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등도 회자된다. 지난해 브라질의 리우올림픽은 앞선 올림픽 개막식보다 적은 예산으로도 카니발적인 연출로 자국의 미와 흥을 뽐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200여일을 앞두고 최근 서울에서 만난 송승환(61) 개·폐회식 총감독(PMC프러덕션 예술감독)은 "작지만 알차고 차별화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올림픽의 개·폐회식 예산은 무려 6000억원이었다. 다른 나라의 개·폐회식 역시 2000억원 안팎을 투입한다. 하지만 평창은 2000억원의 약 30% 수준에 불과하다.

'열정과 평화'를 콘셉트로 삼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폐막식이 '메가 이벤트'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자 하는 이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과 계약상 개·폐회식에 대한 내용은 자세히 공개하기 힘들다고 밝히면서도 전체 행사를 총괄하는 송 감독은 자신이 있어 보였다.

"사실은 우리 앞에 했던 소치·런던·베이징이 메가 이벤트를 벌여 부담스럽죠. 하지만 어차피 총감독을 맡을 때 우리의 적은 예산은 알고 있었어요. 차별에 중점을 두는 이유죠."

최근 카메라 연출 때문에 만난 OBS(국제 올림픽 위원회의 주관 방송사인 올림픽 방송 서비스)도 연출 안을 마음에 들어했다고 했다. OBS는 올림픽 개폐막식 중계를 위해 약 35대의 카메라를 설치한다. 미국 NBC 역시 30대의 카메라를 따로 설치할 계획이다.

"OBS에서 '기존과 다르고 특별하다'고 하더라고요. 개·폐막식 장소도 기존 다른 나라들처럼 축구장 같은 형태의 경기장이 아니라 개·폐회식만을 위한 공간이라 독특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자신감을 얻었어요. OBS와 NBC(7일 회의)와 미팅이 중요한 것이 현장에서 관람하는 3만5000명도 중요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시는 수억명도 중요하거든요. 그들이 우리의 연출 안을 잘 이해해야 해야 카메라 워킹도 잘 나올 겁니다."

올림픽 개폐회식은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지는 일종의 융·복합이다. 송 감독의 대표작으로 국제적으로 인기를 끈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역시 한국의 사물놀이와 외국의 슬랩스틱 등을 결합한 대표적인 융·복합 공연이다. 송 감독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를 거쳐 2010년부터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 교수(현재 휴직)로 재직 중이기도 한 융·복합 전문가다.

"특히 동·서양 문화의 융·복합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그렇게 했을 때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봤고요. 그런 노하우가 발휘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올림픽 개·폐회식의 감독 또는 연출 자리는 '독이 든 성배'에 비유된다. 특히 송 감독처럼 이미 명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다. 잘 해도 한쪽에서는 뾰로통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으니 '잘 해야 본전'이라는 속성이 있다.

"제가 여러 고비도 많이 겼었지만 일의 선택 기준은 '재미있느냐, 없느냐'에요. 이번 건은 흥미로웠죠. 개인적으로 그동안 만든 공연 중에서 가장 큰 무대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드는 무대잖아요. 평가를 떠나서 열심히 도전하고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최근 악몽과 길몽을 번갈아가면서 꾸고 있어요. 호된 비평을 받는 꿈, 칭찬을 받는 꿈이죠.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하."

송 감독과 함께 개회식·폐회식을 맡는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49) 총연출과 장유정(41) 부감독의 존재는 든든하다고 했다. 공연계 유명 인사들이 평창 올림픽을 위해 삼각편대를 이뤘다.

"양 연출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동양적으로 잘 해석한 것에서 보듯 글로벌한 감각이 있어요. 장 감독은 여러 작품을 같이 했는데 악바리 같은 친구에요. 정말 열심히 하죠. 개회식은 양 연출, 폐회식은 장 부감독 위주인데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 감사하죠."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문화올림픽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평소 문화에 지원을 하지 않다가 국가적인 행사에 문화 엘리트의 도움을 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예술계 지원에 대해서는 투 트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순수예술은 갈수록 힘들어지니 기업의 메세나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이번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청년들이 문화와 관심이 많거든요. 문화와 예술로 먹고 살려면 산업화가 되는 것도 필요하죠. 흐름에 따라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은 문제에요. 영화 '쥬라기 공원'이 자동차 제조보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확 문화산업으로 쏠리고, 그러다 '블랙리스트' 건이 불거지자 지원에만 쏠리고. 그런 편중된 것보다 두 가지를 같이 데리고 가야죠."

최근 문화예술계의 또 다른 어려움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다. 특히 중국 관객들로 들끓던 PMC 프러덕션의 '난타'가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 단체관객이 많이 들던 충정로의 난타 전용관은 임시 휴업 중이며, 역시 호응이 크던 중국 광저우 전용관 역시 잠시 문을 닫았다.

송 감독은 힘들다면서도 낙담하지는 않았다. "워낙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라서요. 직원들에게도 '앞으로 이보다 어려운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독려하고 있어요."

PMC프러덕션하면 '난타'가 떠오르지만 사실 이 공연제작사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연 50여편을 제작했다. 창작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와 '난쟁이들', 라이선스 뮤지컬 '라카지' 같은 인기 뮤지컬은 물론 최근 호평 받은 연극 '베헤모스', 어린이용이라고 하기에는 작품성까지 갖춘 뮤지컬 '정글북' 등 다양하다.

CJ E&M과 손잡고 동명의 인기 드라마를 무대로 옮기는 뮤지컬 '응답하라 1994'는 기존 PMC프러덕션이 선보인 뮤지컬 '달고나' '젊음의 행진'과 함께 주크박스 뮤지컬 3부작으로 통한다.

"제 취향이 한 군데 갇히지 않거든요. 한 가지 성격의 작품들을 만드는 제작사도 있지만 저희는 다양하게 만드는 프로덕션이죠."

사실 송 감독은 배우도 이미 유명세를 떨쳤다. 1965년 KBS 라디오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은방울과 차돌이'의 MC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연극 '에쿠우스'의 앨런 역을 맡아 청춘의 상징으로 통했다. 추후 그가 2009년 '에쿠우스'에서 앨런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역을 맡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 감독의 연극 데뷔작은 1968년 극단 광장의 '학마을 사람들'. 아역으로 이 작품에 출연한 그는 그해 동아연극상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1977년 76소극장 단원으로 가입해 활동했지만 정확히 따지면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내년이 연극 무대 데뷔 50주년이 되는 셈이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그의 인생에 맞는 특별한 인연들이다.

"한국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융합이에요. 어떤 외국인에게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물었더니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하더라고요.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서 한국의 현대 문화와 전통 문화를 잘 융·복합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국제 행사를 하면 한국의 전통 문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제는 벗어나야 하는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죠."
  •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