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시대… '예술은 무엇인가'를 묻다

  • 베네치아=장승연 '아트인컬처' 편집장

입력 : 2017.05.12 00:49

- 제57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가보니
미술의 상업화 비꼰 한국관… 허스트 신작과 대조 이뤄 호평
英 매체, 주목할 국가관 선정

'파우스트' 다룬 독일관도 북적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2년마다 '미술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제57회 베네치아 비엔날레(5월 13일~11월 26일) 프리뷰가 시작된 지난 10일, 섬은 세계에서 날아온 미술인들로 들썩거렸다. 본 전시에만 51개국 120명 작가가 참여하고, 86개 국가관, 23개 부대전시가 어우러진 매머드급 규모다.

올해 예술감독을 맡은 크리스틴 마셀(Macel)은 '예술 만세'를 의미하는 '비바 아르테 비바(Viva Arte Viva)'를 전시 주제로 삼았다. 10일 기자회견에 나온 마셀은 "위기와 갈등,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시대에 예술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최후의 보루"라며 "오로지 예술가의 목소리에 집중한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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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 최의‘베네치아 랩소디’로 외관을 장식한 한국관은 연일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장승연 편집장
베일을 벗은 본전시는 미술을 향한 거대한 '감탄사'에 가까웠다. 우선 현대미술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한층 줄어들었다. 평범함(Common), 땅, 전통, 샤먼, 시간과 무한성 등 총 9개 세션으로 구성된 전시엔 난해한 개념보다 시각적 조형미를 앞세운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작품은 브라질 작가 에르네스토 네토의 조형물이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그물망으로 식물 덩굴을 연결해 만들었다. 아마존 후니 쿠인(Kuin) 인디언들이 영적 의식을 수행하는 장소인 '큐픽사와' 형태를 차용한 것으로, 관람객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위안과 치유로서의 예술을 표방한 네토는 작품을 쉼터로 제공하면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덴마크 출신 올라퍼 엘리아슨은 '그린 라이트―아티스틱 워크숍'으로 본전시에 합류했다. 기하학적 모듈을 활용한 녹색 램프를 관람객이 직접 만들어보는 워크숍 형태의 전시로, 일찌감치 북적였다.

팔라초 그라시 미술관에서 선보인 데이미언 허스트의‘그릇을 가진 악마’.
팔라초 그라시 미술관에서 선보인 데이미언 허스트의‘그릇을 가진 악마’. 18m 크기의 압도적인 조형물로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GettyImages 이매진스
본전시에 초대된 한국 작가 김성환의 'Love Before Bond'(굴레 이전의 사랑)는 비디오,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를 결합한 영상설치 작업이다. 미국의 16세 흑인 청소년들이 법과 인습, 차별의 굴레에 들어서기 전 경험하는 사랑을 묘사했다. 이수경은 깨진 도자기 파편을 금박으로 이어 붙인 높이 5m 규모의 조형물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을 선보였다. 버려진 파편들이 무한히 증식해가는 형태가 관능적이고 아름답다.

국가관 전시에선 코디 최와 이완이 협업한 한국관이 예상을 뛰어넘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외관을 장식한 코디 최의 네온 설치 '베네치아 랩소디'가 비평가들을 사로잡았다. 라스베이거스·마카오의 카지노 간판을 차용한 이 작업은 갈수록 상업화돼가는 비엔날레와 현대 자본주의를 비꼰 것으로, 블랙유머가 주는 활기로 가득하다. 아담 와인버그 미국 뉴욕 휘트니 미술관장은 "올해 최고의 파빌리온"이라 극찬했다. 영국의 미술 권위지 아트앤뉴스페이퍼는 한국관을 '주목할 국가관 톱8'에, 아트트리뷴은 '톱5'에 선정했다.

독일 국가관도 호평받고 있다. '파우스트'가 주제로, 바닥 전면을 위태로운 유리로 깔아 젊은이들의 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노래하고 몸부림치는 젊은이들과 우리에 갇힌 채 짖어대는 4마리 도베르만이 인간 세계의 모습을 기묘하고도 강렬하게 풍자한다.

비엔날레 기간 중 팔라초 그라시에 전시되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신작 '난파선에서 건져낸 믿을 수 없는 보물'도 연일 관람객 발길로 붐빈다. 이추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고고학과 신화를 기반으로 바다에 가라앉은 보물들을 건져 올리는 상상을 대형 조각으로 구현해낸 허스트 작품은 스펙터클한 충격을 던진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통하는 허스트 전시는 '이 시대 예술은 무엇인가?'를 묻는 비엔날레 본전시 풍경과 아찔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