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韓 젊은 성악가들의 저력… 서커스 같은 오페라

  •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클라라하우스 대표

입력 : 2015.10.19 00:05

[부세토와 볼쇼이의 '리골레토']

부세토, 춤까지 추며 파격 공연
볼쇼이, 로버트 카슨 新作 눈길

백과사전에 오죽하면 '파르마 청중(Parma audience)'이라는 고유 명사화된 말이 있을까. 베르디의 고향을 품고 있는 이탈리아 파르마 사람들의 오페라에 대한 식견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14일 저녁 2015 베르디 페스티벌이 열린 파르마 왕립극장. 오페라 '해적'에서 해적 두목 코라도를 노래한 테너 디에고 토레의 목소리가 갈라지자 "너 여기 왜 왔니"하며 사방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 15일 올린 이탈리아 부세토 베르디 극장의‘리골레토’. 바리톤 노동용(가운데)이 주인공 리골레토를 맡는 등 한국 성악가들이 여럿 출연했다.
지난 15일 올린 이탈리아 부세토 베르디 극장의‘리골레토’. 바리톤 노동용(가운데)이 주인공 리골레토를 맡는 등 한국 성악가들이 여럿 출연했다. /유혁준 제공
다음 날 파르마 근교, 베르디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부세토의 베르디 극장에서는 '리골레토'가 새 프로덕션으로 막을 올렸다. 토스카니니에서 무티까지 수많은 거장이 지휘했던 300석 규모의 소극장은 베르디 페스티벌 중 능력 있는 신진 성악가들을 주역으로 내세운다. 리허설 도중 다리 부상으로 하차한 공작 역의 김성현을 포함해 노동용(리골레토), 신명준(스파라푸칠레), 이다미(죠반나) 등 4명의 한국 성악가들이 '리골레토'에 출연했다.

부세토 베르디 극장은 좁은 무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알레시오 피체크가 연출한 '리골레토'는 커튼을 곳곳에 배치해 장면을 변화시켰다. 현대 의술의 발달로 허리 수술을 받은 리골레토는 1막엔 광대 옷을 입었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무대를 누볐다. 막이 바뀌면서 회색 코트로 갈아입었고, 3막에서는 이마저 벗고 자신의 척추 교정기를 보여주며 비밀을 벗어 던졌다. 바리톤 노동용은 설득력 있는 리골레토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묵직한 저음이 일품이었던 신명준의 스파라푸칠레는 때로 리골레토의 의심을 풀기 위해 춤까지 추는 파격을 선보였다. 까다로운 현지 관객들의 박수를 끌어냈다.

모스크바의 '리골레토'는 서커스 극장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지난 8일 모스크바 볼쇼이 신(新)극장은 세계 최정상 오페라 연출가 로버트 카슨의 '리골레토'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태양의 서커스' 나라 캐나다 출신답게 카슨은 1막 시작부터 무희들이 브래지어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대담한 노출과 곡예에 가까운 연기를 펼쳤다.

'그리운 이름'을 부른 질다는 서커스 그네에 매달려 공중을 떠돌았다. 가신(家臣)들은 바퀴 달린 집을 통째로 옮겨 질다를 납치했다. 딸을 잃은 리골레토가 텅 빈 무대에서 절규할 때 객석도 함께 울었다. 3막 피날레에서 죽은 딸을 부둥켜안은 리골레토 위로 거꾸로 매달린 곡예사가 회오리치듯 내려왔다 올라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볼쇼이의 역습'이었다. 1990년대부터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 극장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볼쇼이 극장은 2011년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마쳤다. 자존심을 버리고 프랑스, 벨기에 등 4개 극장과 손을 잡은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