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On]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수면(水面)

  • 아트조선

입력 : 2015.02.12 16:00

변홍섭, 시간을 찍다

사진은 이미 있는 것, 존재하는 것에 기생한다. 그 사물의 표면에 다가가 렌즈를 갖다 댄다. 그런데 이 사진은 정작 대상은 부재하고 그 대상이 비춰진 수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상 없는 곳에서 대상이 보여 진다. 결국 이 사진은 허상, 환영을 찍고 있다. 그 이미지는 이른바 유령이고 귀신같은 이미지다. 있다고 하기도 어렵고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림자, 잔영은 그런 것이다. 사실 모든 이미지는 환영이다. 최초의 이미지는 수면에 비친 누군가의 상이었다.

time_1 fineart baryta    archival  pigment print 5530cm(hong_seop 2014)
time_1 fineart baryta archival pigment print 5530cm(hong_seop 2014)
나르키소스는 그런 의미에서 이미지를 발견한 사람, 최초의 화가이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수면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허상, 환영에 속아 표면 아래로 사라진다. 그렇게 수면은 최초의 거울, 최초의 화면이었다. 물은 주체에게 거대한 환영을 요구한다. 수면 밑바닥을 보여주지 않고 다만 그 표면에서 일어나는 환영만을 안겨준다. 그러나 물은 표면만이 아니라 표면에서 바닥까지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질료덩어리다. 질료덩어리의 흔들림과 뒤척임이 수면위에 흔들리고 굴절된 상을 만들어준다.

time _6 fineart baryta archival  pigment print 5530cm(hong_seop 2014)
time _6 fineart baryta archival pigment print 5530cm(hong_seop 2014)
작가가 촬영한 것은, 결국 물이다. 그런데 물/수면은 비어있지 않아 주변의 것들을 담고 반사한다. 물은 거울처럼 비출 뿐이다. 그것은 기다린다. 존재가 다가오면 비춰주고 사라지면 닫는다. 그렇게 수면은 화면이 되어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물에 비친 하늘과 건물, 나무 등은 분명 현실계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그림자와 같은 반사된 상에 불과하다. 순간 실재와 가짜가 뒤섞이며 헷갈린다. 이런 사진은 ‘실재와 재현, 진짜와 가짜의 혼동에서 오는 인식론적 즐거움을 주는 작업’의 일종이기도 하다. 물에 비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자율적인 하나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것 또한 실재 세계와 다른 또 다른 세계이다. 그러니까 이미지로서의 세계다. 그러나 이 이미지로서의 세계가 현실계를 다시 보게 해주는 한편 어떤 고리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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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자료 제공 : 마이아츠 (http://myart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