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는 소박한 맛? 편견 깬 푸른색 멋

  • 허윤희 기자

입력 : 2014.09.30 02:59 | 수정 : 2014.09.30 03:06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 展]

국내 최초·최대 청화백자 전시… 500여점 선보여
백자 위 코발트 안료로 그린 왕실 명품
19세기, 향유층 확대… 봉황·십장생 등 무늬 많아져

‘운현(雲峴)’이라 쓰인 19세기 영지 넝쿨무늬 병. 조선 말기 왕실에서 사용한 청화백자는 일반과는 구별되는 장식·표현으로 수준과 품격을 유지했다
‘운현(雲峴)’이라 쓰인 19세기 영지 넝쿨무늬 병. 조선 말기 왕실에서 사용한 청화백자는 일반과는 구별되는 장식·표현으로 수준과 품격을 유지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 백자(白磁)는 소박하다고? 푸른 넝쿨무늬를 온몸에 휘감은 청화백자 앞에서 선입견은 순식간에 깨진다. 곧고 긴 목, 볼륨감 있는 몸체의 19세기 백자병. 큼지막한 영지버섯 무늬 사이에 넝쿨무늬를 빼곡히 채웠고, 몸체 아랫부분엔 펼쳐진 연꽃잎을 연속으로 그렸다. 바닥에는 청화 세필로 '운현(雲峴)'이란 글씨를 새겼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사저(私邸)이자 고종이 나고 자랐던 운현궁(雲峴宮)에서 사용했다는 뜻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기획 특별전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를 30일 개막한다. 청화백자를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 전시로 국보·보물 10점을 포함해 500여점이 나왔다. 전시장 벽면을 찬장처럼 채운 규모에 압도되고 백자에 그려진 다채롭고 화려한 문양에 놀란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일제강점기 이후 공개되지 않은 청화백자 150여점을 최초 공개하고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이데미쓰(出光)미술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을 비롯해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 등 국내 14개 기관에서 대표작을 빌려왔다.

값비싼 코발트 안료로 그린 왕실 고급품

청화백자는 중국 원대(元代)에 처음 만들어졌고 명대(明代)에 유럽에 수출됐다. 조선 청화백자의 등장은 15세기 무렵이다. 중국 청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조선 특유의 표현으로 독자적 면모를 과시한다. 청화백자란 백자 태토 위에 코발트가 함유된 안료인 회청(回靑)을 이용해 문양을 그린 것. 당시 코발트 안료는 페르시아에서 생산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까닭에 매우 값비싼 재료였다. 이 때문에 조선 전기까지 청화백자는 왕과 왕실의 전유물이었다. 김영나 관장은 "순백의 백자가 조선을 개국한 신진 사대부의 성리학적 정신세계를 투영했다면 청화백자는 조선 왕실 미술의 화려한 품격을 보여주는 고급품이었다"고 했다.

전시는 청화백자를 사용하는 계층이 왕실에서 문인, 일반 백성으로 확대돼 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왕실의 청화백자를 모은 2부에선 15~16세기 최상급 명품을 볼 수 있다. 국보 176호 '홍치이년(弘治二年)이 쓰인 소나무 대나무무늬 항아리'(동국대박물관 소장), 국보 219호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국보 222호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호림박물관 소장) 등이 총출동했다.

한·중·일 삼국의 명품 청화백자 교류상도 펼쳐진다. 중국 명대 영락(永樂)·선덕(宣德) 연간에 생산된 중국 청화백자와 일본 청화백자가 6점씩 비교 전시된다. 명(明) '선덕년제'가 쓰인 구름 용무늬 항아리(이데미쓰미술관 소장), 일본 에도 17세기 이마리(伊万里) 자기(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등 눈이 호사스럽다. 3부에선 조선 18세기 문기(文氣) 흐르는 청화백자를 소개한다. 조선 후기 문인들이 감상했던 산수와 사군자를 우윳빛 백자 태토에 그렸다.

"19세기 청화백자의 재발견"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4부에 있다. 19세기 청화백자의 향유층이 대폭 확대되면서 그릇 종류와 형태는 물론 무늬도 다양해졌다. 봉황·십장생·호랑이 등 장수(長壽)와 복(福)을 희구하는 마음이 직접적으로 문양에 표현된다. 4부 마지막엔 '운현' 글씨가 새겨진 청화백자 등 조선 후기 왕실 사용품을 따로 모아 눈길을 끈다. 임진아 학예연구사는 "19세기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대량생산으로 하향 평준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층위는 넓어졌지만 왕실의 품격은 전기부터 후기까지 질적으로 일관된 수준을 이뤄왔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올해 고미술·현대미술계 안팎에서 풍성하게 열린 백자 전시의 완결판이라 할 만한 전시다. 11월 16일까지. 관람료 성인 5000원. (02)1688-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