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半白의 학자가 누드 그려 전시하겠다니, 다들 놀라데"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3.04.05 00:18

[누드화 '몸 이야기展' 여는 강현두 서울대 명예교수]
30년 넘게 언론학 가르쳐, 정년 앞두고 처음 붓 잡아… 화가의 길, 내 삶의 보너스

"뭐? 광화문 한복판에서 누드화 전시를 하겠다고?"

친구들에게 전시회 초대장을 건넸을 때 첫 반응은 이랬다. 일흔을 훌쩍 넘긴 반백의 신사가 실오라기 한 올 두르지 않은 여인의 나체를 그려 만방에 전시하겠다니 그럴 만도 했다. '화가'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한국언론학회장·한국방송학회장·KBS TV PD 등을 역임한 언론학계의 저명인사. 2002년 서울대를 정년퇴임하고 한국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의 사장까지 지냈다.

이름 없는 화가는 사비를 털어 전시회를 연다. 강현두 교수도 마찬가지. 그는“물감 사고 붓 사느라 앉아서 따박따박 연금을 까먹고 있다”며 웃었다. 뒤에 보이는 그림이 손주들이 보고도 못 본 척한다는 누드화다. /오종찬 기자
강현두(76) 서울대 명예교수가 오는 24~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 베세토 갤러리에서 누드화 전시 '강현두의 몸 이야기'를 연다. 여러 겹의 장판 용지를 배접해 만든 천연 장판지에 수채 물감으로 그린 누드화 50여점이다.

지난 1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주관적 생각은 배제하는 학자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림으로 내 생각, 삶의 얘기, 문명의 뒤안길을 자유롭게 펼쳐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널찍한 집 안 곳곳에 손때 묻은 화구(��具)가 숨어 있었다. 성우 출신 방송인인 부인 김세원(68)씨가 "작업실이 따로 없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 앉아 스케치를 한다. 방마다 침 발라 뒀다"며 웃었다.

정년을 3년 앞둔 1999년 그림에 눈떴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해방 전후 시대였고 중학교는 6·25 전쟁 때 피란지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수복 직후 다녔다. 그 혼란 통에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니 화가의 길로 보너스 삶을 살고 싶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2000년 3월 예술의전당 미술실기아카데미 기초반에 등록하고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수강생 20명 중 남자는 그를 포함해 달랑 3명. 나머지 둘은 중도에 그만뒀다.

2007년 그간 그린 수채 풍경화를 모아 '지구촌 풍경기행' 전시를 열었다. 그 후로는 법정스님·백남준 등을 비롯해 여행 다니며 찍은 사람들 사진을 모델 삼아 인물화를 그렸다. 2010년에 연 '인간, 일상 그리고 소통'이 바로 그 결실이었다.

"10년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사진만 보고 그리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내 생각도 좀 더 확대해서 표현하고 싶었죠." 마침 아카데미에 인체 누드 크로키 반이 생겼다. 4~5분마다 자세를 바꾸는 대상을 순식간에 그려야 하는 과정이었다. "마음에 기억되는 자세를 그리는 거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게 아니었어요. 새로운 자극이었죠."

전북 전주에 내려가 장판지를 한 아름 사왔다. 파스텔, 아크릴, 목탄 등 재료를 마음대로 종이에 칠했다. 다양한 누드 크로키를 새 종이에 뒤섞어 다시 그린 뒤 파란색과 보라색 몸으로 재구성했다. '강현두의 누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솔직히 멋쩍다"고 했다. "학교 선생이 누드 그려서 전시회를 연다는 게 용기가 안 나죠. 남들은 이상하게 보고. 하… 이걸 내보일 걸 생각하면…." 그의 누드화에 대한 첫 반응이 "음… 좋네"였던 부인 김씨는 "집에 놀러 온 손주들이 할아버지가 그린 누드 그림을 봐도 못 본 척한다"며 웃었다.

그가 고른 방법은 "동네방네 전시회를 연다고 떠드는 것"이다. "그래야 후퇴할 수 없거든요. 전시회를 열어서 마무리를 짓고 또 다른 챕터로 넘어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