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11 03:02 | 수정 : 2012.12.11 10:17
미술계 인사 40명이 꼽은 올해 이슈와 내년 키워드
올해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작가는? 올해 놓쳤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한 전시는? 내년 미술계를 전망할 수 있는 키워드는?
'2012년 미술계 결산'을 위해 평론가·전시 기획자·작가·미술시장 전문가·미술전문지 기자 등 40명에게 이런 설문을 던졌습니다. 설문은 주관식으로 진행됐으며, '내년 키워드'를 제외한 문항에는 각 3건까지 추천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1] 작가 - 마흔셋 동갑내기 듀오, 문경원·전준호
'예술의 역할' 영상물 공동 작업… 카셀 도큐멘타 참가로 인정받아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동갑내기 예술가 문경원(43)·전준호(43) 팀이 올해 거둔 성과는 이 성경 구절대로다. 미술계 인사 40명에게 '올 한 해 동안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활발히 활동했던 작가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더니, 자그마치 29명이 이들을 꼽았다.

지난해 이들이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 양혜규(41)와 함께 '2012 카셀 도큐멘타'에 한국 작가로서는 20년 만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미술계 반응은 이랬다. "대체, 왜?"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후 미디어로 선회했던 문경원과 동의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주로 부산에서 활동해왔던 전준호는 '유망주'이긴 했지만,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협업이라니.
그러나 걱정은 기우(杞憂)였다. 과학자·시인·영화인 등에게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미래'를 묻고 그 결과를 이정재·임수정 주연의 15분짜리 영상물로 만든 '세상의 저편'은 카셀 도큐멘타에서 뜨거운 평을 받았다. '예술의 의미'를 묻는 이 작품은 광주비엔날레 '눈(目) 예술상'을, 이를 발전시킨 '공동의 진술-두 개의 시선'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이인삼각'으로 3관왕을 이룬 것이다.
―어떻게 공동작업을 하게 되었나.
"2007년 타이베이 비엔날레행 비행기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다. 어색해서 얘기를 시작했다. 서로의 작업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미술계에 대한 회의까지. 신기하리만치 대화가 잘 통했다. 귀국해서도 인터넷 채팅으로 계속 이야기를 했고, 이를 '작품'으로 만들자고 합의했다."
―카셀 도큐멘타 초청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의외라 했다.
"우리는 2010년 초 도큐멘타 세팅 단계에서 이미 참여 작가로 선정됐었다.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예프 도큐멘타 총감독이 한국에 왔을 때, '이러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프레젠테이션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자세한 제안서를 보냈고, 2주쯤 후 공식 초청 레터를 받았다."
―개성 강한 예술가의 협업은 어떤가.
"작업의 방향성·기호는 잘 맞아서 주제나 기법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다만 오래 작업하다 보니 심신이 고단해져 싸웠다. 개인작업으로 굳어진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깨기가 쉽지 않았다. 덕분에 '양보'와 '객관성'을 배웠다. 다만 다시 '홀로 서기'를 했을 때 개성을 유지할지 걱정된다."
―'영화' 형식을 택한 이유는.
"조악하고 내용이 불분명한, 비주얼에만 치우친 영상작품에 불만이 있었다. 의미, 긴장감, 명확한 주제의식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작품에서 '예술의 영원성'을 말한다. 두 사람에게 '예술'이란.
"작업 초기에 이창동 감독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종교가 우리가 가지는 유한한 삶에 답을 제시한다면 예술은 질문을 하는 것'이란 답을 들었다. 그 답이 우리 생각과 맥이 통한다."
[2] 전시 - 아니시 카푸어
명불허전(名不虛傳). 런던올림픽 기념탑 설계자 아니시 카푸어(58)의 삼성미술관 리움 개인전이 '놓쳤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만큼 좋았던 전시' 1위로 꼽혔다. 내년 2월 8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엔 현재까지 3만5000여명의 관객이 들었다.

응답자들은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섬세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전시였다" "철학적, 종교적, 지역적 경계를 초월하는 감동을 선사했다"고 평했다. 작가가 살았던 서울·뉴욕 등지의 집을 천을 사용해 실물 크기로 재현해 선보인 삼성미술관 리움의 서도호 개인전 '집 속의 집', 덕수궁 전각에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설치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 프로젝트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로 서울 소재 미술관 기획전이 주목받는 가운데 지방 전시로서는 드물게 전북도립미술관의 '채용신과 한국의 초상미술'전이 "초상미술의 미학적 전통을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는 평과 함께 상위권(공동 7위)에 올랐다.

[3] 내년 키워드 - 침묵·점검
'내년 한국 미술계의 키워드를 제시해달라'는 문항에는 지속적인 경기불황으로 인한 침체를 예견하는 답들이 이어졌다. '침묵과 자기 점검', '침잠', '늦겨울', '각개전투', '자승자박', '곤궁이통(困窮而通)', '양극화' 등이다.
◇설문 응답해주신 분들 (가나다순)
고원석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김노암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 김선희 대구미술관장, 김순응 아트컴퍼니 대표, 김애령 예술의전당 전시감독,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김윤옥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 박영택 경기대 교수,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서진석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서진수 미술경제연구소장, 송미숙 전 성신여대 교수, 오진이 서울대미술관 큐레이터, 우찬규 학고재 대표, 우혜수 삼성미술관리움 학예실장, 유진상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윤범모 가천대 교수, 윤익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1과장, 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 이옥경 가나아트갤러리 대표, 이진숙 미술평론가, 이현숙 국제갤러리 대표, 임근준 미술평론가, 임자혁 서울대 미대 교수, 임창섭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정연심 홍익대 미대 교수, 정준모 전 덕수궁미술관장, 정현 홍익대 미대 교수, 조은정 미술평론가, 최열 미술평론가,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1팀장, 최정주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호경윤 월간 아트인 컬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