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그녀의 깊은 '연기의 맛'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11.11 23:30

'버자이너 모놀로그' 황정민

이덕훈 기자
언젠가 'B급 정서'의 시대가 올 것이라 예감케 한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였다. 황정민(43·사진)은 민낯 그대로 출연해 신하균에 버금가는 존재를 드러냈다. 올해 대종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 '밍크코트'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단팥빵을 꾸역꾸역 씹어먹으면서, 사정없이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를 눈빛으로 제압했다. 가장 대중적 성공이라면 영화 '돈의 맛'에서였을 것이다. "당신 월급쟁이지. 나도 그렇고." 회장님 심복의 이 짧은 대사가 그의 입에서 나오면 으스스한 협박이 됐다.

그가 지난달부터 연극으로 돌아와 '연기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성(性)을 통한 여성의 본질적 자아를 탐구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황정민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베트남 여성, 비만 캠프에 들어간 10대 소녀, 위안부 할머니로 변신한다. 무대 전환 없이 표정과 목소리로만 순식간에 다른 인물이 되는 그의 연기는 낸시 랭의 '신음 퍼포먼스' 등 작품 외적 논란으로 화제가 되는 연극을 굳건하게 세우는 중심추가 된다. 지난 8일 충무아트홀에서 만난 황정민은 "저도 모르던 저를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황정민이 아는 황정민'은 서울예대를 세 번 도전 끝에 입학한 '사수생'이었다. 졸업 후 거장 오태석의 극단 '목화'에 들어가 14년을 목화의 배우로 살았다. 황정민은 "연극 정신부터 일상 태도까지 무한한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무대의 맛은 돈과 공존하기 힘든 법. 차비라도 벌려고 남대문 새벽 시장에서 마이크 잡고 호객을 하고, 의류공장에서 속칭 '시다'로 실밥을 뜯고 옷을 개켰다. 미제 부엌칼 영업사원으로 나서 '이달의 판매왕'도 해봤다. "힘든 줄도 몰랐어요. 연기가 느는 희열 때문에요."

이 연극은 제목부터 많은 사람을 사리게 만든다. 황정민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쩐지 소화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연출자 이지나씨의 청에도 수차례 고사하다 맡았다. "일단 책을 읽었는데 무조건 거부할 수 없는 다각적인 힘이 있었어요."

그는 이 연극을 이성(異性)에게 권한다. "남성이 꼭 보셔야 될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여자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이 아니면 어떻게 알겠어요?"

▷'버자이너 모놀로그' 2013년 1월 6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1666-8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