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미술토크] 그리지 않았던 그림

  • 아트조선

입력 : 2012.10.12 16:05

[작가토크] 로버트 라우센버그

공연이 시작되면 음악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침묵이 흐릅니다.

그렇다고 연주자나 지휘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연주에 몰입합니다. 이후 4분 33초가 흐르면 침묵을 깨며 연주가 끝이 납니다. 이때 관객은 박수를 칩니다. 도대체 무엇을 들으라는 것인가요?

'4분 33초'라는 제목을 가진 이 음악을 작곡한 사람은 존 케이지입니다.

그는 침묵 속에 흐르는 자그마한 소음들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몸을 움직이는 부스럭거림일 수도 있고 혹은 작은 숨소리나 간간히 들리는 기침소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전위 예술가들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습니다.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 곡을 작곡한 존 케이지가 곡을 만들 당시 친하게 지내던 미술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미국 현대미술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 미술가의 이름은 로버트 라우센버그입니다.

bed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30살에 작업했던 '침대' 라는 작품입니다.

자세히 보면 자신의 실제 침대보라고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나 지저분한 침대보를 벽에 걸어 놓고, 위에는 베개를 붙힌 다음 연필로 어지럽게 긁적여 놓았고, 그 위에 물감을 마구 짜 놓았습니다.

어떤 색은 농도가 진해서 떡처럼 붙어있고, 어떤 색은 농도가 묽어 줄줄 흐릅니다. 도대체 작가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또한 이 작품에서 무엇을 느끼게 하기 위함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제목에도 힌트가 없습니다. 침대를 침대라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에는 없던 형태의 작업입니다. 라우센버그는 스스로 "이것이 컴바인 페인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뉴욕현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monogram

이 작품의 이름은 '모노그램'입니다. 박제된 산양이 있는데 허리에 폐타이어를 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굴에는 역시 물감이 뿌려져 있고, 엉덩이 쪽에는 야구공이 하나 있습니다.

바닥을 보면 경첩도 보이고 상표도 보입니다. 셔츠와 발자국도 보이고, 신발 뒷 굽과  어떤 사진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에서 어떤 연관성이 보이십니까? 사실 자유로운 영혼 라우센버그는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하며 상대는 유명 미술가였던 사이 톰블리, 재스퍼 존스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은 온통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의견을 내 놓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작품의 의도가 어떻게 해석되든지 틀림없는 사실은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새로운 형태의 페인팅으로 현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자료·영상 제공 :
서정욱(서정욱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