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18 03:03 | 수정 : 2012.08.18 03:25
[7년 만에 '헤드윅' 주연, 오만석]
7년 전보다 더 떨리는 무대… 같은 대사도 더 '울컥'한 느낌
초연 때 인기, 과찬이었죠… 지금은 기대치 높아서 겁나요
무대 떠나 생긴 마음의 갈증, 관객들과 호흡하며 채워요

돌아온 '오드윅'은 더 뜨겁게 타올랐다. 지난 11일 뮤지컬 '헤드윅' 개막날, 7년 만에 다시 주연을 맡은 배우 오만석(37)은 절망과 갈망에 몸부림치는 헤드윅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절정에 오른 그가 가발을 벗어 던지자, 숨죽이고 있던 관객 300여명은 참았던 탄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하니 확실히 달라요. 같은 대사인데도 울컥하고 밀려오는 느낌이 훨씬 강하고요. 세월이 그냥 가는 게 아닌가 보네요." 지난 16일 공연장인 강남구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에서 만난 오만석은 "공연 30분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막상 올라가니 갑자기 긴장이 덮쳤다"며 "관객의 열정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 것 같다"고 말했다.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록 가수 헤드윅은 초라한 싸구려 모텔에서 공연한다. 헤드윅의 곡으로 스타가 된 토미가 바로 옆에서 화려한 콘서트를 연다. 토미를 향해 울분을 토하던 헤드윅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토미의 한마디에 모든 응어리와 분노, 회한과 원망을 내려놓는다. 곁에 붙들어뒀던 '남편' 이츠학에게 건네는 가발은 스스로에게 주는 치유의 선물이기도 하다.
2005년 '헤드윅' 초연 때 가장 뛰어난 헤드윅으로 평가받은 것은 조승우가 아니라 오만석이었다. 오만석은 슬픔과 고통이 배어난 깊이 있는 헤드윅을 보여줬다. 원작자이자 동명 영화 주인공인 존 캐머런 미첼이 꼽은 '한국 최고의 헤드윅'도 오만석이었다. 그러나 오만석은 자신을 "평가절상된 배우"라며 낮췄다. "초연 때 인기는 '뒷걸음치다 소 잡은' 격이었죠. 대중이 저를 잘 몰라서 기대가 없던 터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죠. 제안을 받고도 겁이 났어요. 하지만 도전에 인색하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다시 오르게 됐습니다."
이번 '헤드윅' 공연에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제작사 쇼노트의 의지가 담겼다. 매해 공연하면서 타성에 젖은 부분을 찾아 솎아내려던 쇼노트는 원조 헤드윅인 '오드윅'과 새로운 '건드윅'(배우 박건형)으로 새 에너지를 충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를 졸업한 오만석은 연극 '파우스트'(1999)로 데뷔해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왔다. 상(賞)도 많이 받았다. 2005년 '헤드윅'으로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과 인기스타상을, '포도밭 그 사나이' '왕과 나' 등으로 KBS와 S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남자우수상, 인기상 등을 안았다. "드라마와 영화 연기도 매우 재미있다"는 오만석은 "본능적인 갈증을 채우기 위해 무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하다 보면 점점 가슴에 구멍이 커지는 것 같아요. 그 구멍은 살아있는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받는 박수로만 메울 수 있거든요. 공연의 마력이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쇼노트의 송한샘 이사는 오만석을 두고 "다독(多讀)으로 다진 대본 분석력이 탁월한 배우"라고 평가했다. "한 번은 연극 대본을 들고 가서 봐달라고 했는데, 밥 먹고 과일 먹으며 30분 만에 수정할 부분과 대안을 제시했어요. 작가에게 전달하니 고개를 떨구더군요."
오만석은 자신의 '연기 학교'로 군대를 꼽았다. "표현의 예술인 연기는 역설적으로 안으로 쌓고 참는 훈련도 필요해요. 데뷔 전 군대에서 그걸 배웠어요. 응축했다가 적재적소에 힘있게 터뜨리는 연기가 제대 후에 제대로 나온 것 같아요."
이번에도 그는 원없이 터뜨려 보이려 한다. 번번이 실패하고 끝없이 분노했다 완전히 놓아버리는 헤드윅은 관객의 가슴까지 끓어올라 터지게 할 것이다. 오만석은 "예측할 수 없는 '헤드윅'의 마력, 전율과 쾌감을 후회 없이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뮤지컬 '헤드윅' 10월21일까지, KT&G 상상아트홀, 1544-1555
[오만석과 '후다닥 Q&A']
①가장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
멋지게 날아온 센터링을 발리슛으로 성공시켰을 때
②가장 행복했던 공연은?
2000년 연극 '이(爾)'. 무대를 통한 치유가 뭔지 알게 됐다.
③가장 자신 있는 노래?
이문세의 '휘파람'
④힘들 때 거는 주문?
"나는 지금 행복하다."
⑤최근 본 공연 중 최고는?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
⑥제일 좋아하는 대사?
"왕이여, 나 죽으면 한강수에 던져주오. 흘러 흘러 아주 물이 되게. 저 죽은지도 모르게." (연극 '이' 중 공길의 마지막 대사)
⑦가장 존경하는 사람?
원로배우 장민호 선생님. 본받을 점이 무수한 분이다.
⑧좋아하는 작가?
외젠 이오네스코
⑨가장 소중한 건?
딸
⑩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사람
⑪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
페이소스가 있는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