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여장 가수로 변신… "웃긴다는 것은 숭고한 일"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7.21 03:25

웃기고 신나는 뮤지컬 '라카지'의 정성화
육중한 체격에 안 어울리는 여성스러운 말투와 몸짓에 관객들 폭소로 들썩들썩
"의외의 배역 골라서 맡아"

'라카지' 주인공 앨빈 역의 정성화. /악어컴퍼니 제공
하마터면 사람 죽일 뻔했다. 총칼 아닌 말로.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오락시간에 수학선생님 성대모사를 했어요. 웃음바다가 됐는데, 2층에 있던 테니스부 선생님이 배를 잡고 웃다가 얕은 난간 아래로 떨어질 뻔했어요. 옆에 있던 학생들이 붙잡아서 다행히 사고는 안 났죠."

올여름 신작 뮤지컬 중 가장 웃기고, 즐겁고, 신나는 '라카지'에서 여장한 게이 가수로 나오는 배우 정성화(37). 지난 4일 개막 첫 공연부터 공연장 LG아트센터를 관객의 폭소로 들썩이게 했다. 머리에 거대한 리본, 반짝이 드레스에 우람한 팔뚝과 튼실한 다리…. 육중한 체격과 어울리지 않게 여성스러운 말투와 몸짓은 불협화음이기에 더 재미있다.

지난 17일 LG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인터뷰 때는 어떤 배우보다도 진중하고 진지하다. "사람을 웃긴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관객 웃음을 무대에서 볼 때마다 느껴요. '아, 이것 참 행복한 일이구나' 하고요."

인생을 바꾼 '돈키호테'

그는 '반전의 배우'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의외성"이라고 했다. 직전 작품이 구국의 열사 안중근으로 나온 '영웅'이었다. 장쾌한 '장부가'를 부르던 그가 '라카지'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나는 나일 뿐'을 열창한다. 최근 영화 '댄싱퀸'에서 보여준 무게 있는 국회의원 모습과도 또 다르다. "이 작품을 해서 관객이 놀랄 것인가를 따져보고 골라요. '쟤가 저런 것도 잘해?'라는 얘기를 못 들으면 실패한 거라고 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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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난 정성화는 밝고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뮤지컬 궨라카지궩에서 그는 최고의 웃음을 선사한다. /성형주 기자 foru82@chosun.com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와 1994년 SBS 개그맨 공채로 시작한 그는 2004년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서부터 무대의 맛을 알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노래 좀 하는 개그맨'이었다.

돈키호테가 인생을 바꿔줬다. 2007년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준비하던 무렵이다. "네가 산초를 했으면 좋겠다"고 신 대표가 말했다. '웃기는 녀석' 정성화에겐 맞춤 배역. 정성화는 "형님, 혹시 (저를) 돈키호테로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라고 물었다. "돈키호테? 어, 일단 (조)승우가 하기로 했고, 더블은 안 정했고, (류)정한이가 할지 안 할지 모르겠고… 음… 음…." 더듬더듬 답변을 찾던 신 대표는 "네가 증명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성화는 증명했다. 오디션을 당당히 통과해 다른 배우도 아닌 조승우와 더블캐스팅됐다. "조승우와 같은 역을 하면서 어떤 전략을 써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정공법밖에 없다고 봤어요. 조승우보다 잘하는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올랐죠." 돈키호테의 흰 수염을 달고 '이룰 수 없는 꿈'을 열창하며, 정성화는 '개그맨'을 벗고 '배우'를 입었다.

'라카지', 게이가 아니라 모성애가 주제

초등학교 6학년 때 모친이 선물한 8비트 컴퓨터를 끌어안고 사는 그를 보고 부친은 흐뭇해했다. "미래는 컴퓨터 시대, 우리 장남이 될성부른 싹이 보이는구먼!"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컴퓨터 수리기사가 꿈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빌 게이츠를 기대했던 양친에게 그는 "개그맨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펄펄 뛰는 부모님을 학교 축제날 모셨다. 사회를 맡은 그에게 쏟아지는 박수를 보고 부모님도 반했다. 어느 날 밤 자고 있는 그의 얼굴에 끈적한 것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아끼던 영양크림을 발라주며 말했다. "연예인 되려면 피부 좀 가꿔야지."

'라카지'의 앨빈 역은 '어머니'를 표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라카지에는 게이가 나오지만, 게이 뮤지컬이 아니에요. 게이가 아니라 엄마를 표현하는 거니까요.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모성애가 주제라고 봤어요. '취향'이 달라도, 자식을 사랑하고 품어주려는 마음은 같죠."

▲뮤지컬 '라카지' 9월 4일까지, LG아트센터, 1566-7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