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그 '괴물'은 도대체? 연극이 묻는다

  • 신정선 기자

입력 : 2012.06.27 23:24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日 왕따 문제작 들여와 공연
가해학생 부모의 진실 은폐… 무대 올라가 멱살 잡고싶어
'니 부모'가 혹시 우리 얼굴?

자살한 아이는 '여신'이었다. 괴롭히던 학생들이 '여드름의 신'이라며 그렇게 불렀다. 아이는 늦가을 아침 교실에서 목을 맸다. "저는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귀찮고, 제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하다며 남긴 유서 끝에 가해자 5명의 이름이 있었다. 지목된 5명의 부모가 학교로 호출된다. 대기업 간부, 학교운영위원회장, 고등학교 교사, 전직 경찰관인 그들은 강변한다. "우리 앤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 '우리 애'가 그랬다는 것을. 아이의 체육복을 쓰레기장에 처박고, 돈을 내놓으라며 옷을 벗겨 사진을 찍고, 성매매를 강요한 '괴물'이 바로 '내 딸'이라는 것을.

24일 개막한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작 하타사와 세이고·연출 김광보)는 우리 사회의 썩은 생살을 도려내려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이다. 보다 보면 가슴이 절로 답답해진다. 보는 중간 무대로 뛰어올라가 멱살을 잡고 싶어질 수도 있다. 부모들은 합창하듯 부인한다. "밝고 명랑한 내 딸이 그럴 리가!" "모범생에 반 1등인 내 딸이 그럴 리가!"

“내 딸이 그랬을 리가 없어!” 왕따 문제를 정면으로 저격하는 연극‘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중 가해 학생의 부모(가운데)가 자살한 학생이 남긴 유서를 입에 쑤셔 넣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지난 1월 한일연극교류협회가 주최한 현대일본희곡 낭독회에서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을 탄식과 한숨으로 채웠던 문제작을 정식 무대로 옮겼다. 왕따의 원조라 할 일본 작가의 원작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배경만 서울의 사립여중으로 바꿨다. 그런데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직 교사(아오모리 중앙고교)인 작가는 낭독 공연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한 가해 학생이 자살한 피해 학생의 관(棺)을 들여다보며 '주물럭거릴 녀석이 없어져서 심심하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아 쓰게 됐다"고 밝혔다.

학교 폭력을 이야기하는 극이지만, 학생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방치, 방조, 방관한 부모와 교사만 나온다. 가해 학생 부모들은 오히려 죽은 아이를 손가락질한다. 아이의 엄마가 식당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들어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뒤집어씌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내 딸이다. 진실 따위는 필요 없다.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유서를 태우고, 또 한 통이 나타나자 씹어 삼켜버린다. 자식들에게 "부인하라" "증거가 될 문자 메시지를 지우라"고 시킨다. (옆방에 있는 것으로 설정된) 가해 학생들도 사과나 뇌우침을 모른다. "배고프니 피자 시켜달라"고 조른다. 학교 측은 대처에 미온적이다. 왕따 학교라는 게 밝혀져 학교 위신이 추락할까 걱정이 앞선다.

이들을 마냥 비난하기 어렵다는 데에 극이 드러내는 진실의 통점(痛點)이 통렬하다. 가해의 가혹함에 분노가 치밀면서도, 자식을 감싸려는 그들에게 공감이 간다. 그러다 흠칫 놀란다. 무대 위의 얼굴, '니 부모'의 얼굴이 바로 우리 모두의 얼굴일 수도 있으므로.

끝내 속시원한 화해나 눈물겨운 반성은 없다. 작품은 괴물에게 돌을 던지기보다 누가 그 괴물을 만들었는가를 묻는다. 설교하거나 지시하지 않으면서 냉정하게 보여줄 뿐이다. 손숙, 박지일, 이대연, 길해연, 서이숙 등이 연기 아닌 연기를 서늘하게 보여준다. 누가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할지 특정하긴 어렵다. 교사, 학부모, 학생 다 봐야 할 작품이다.

▲7월 29일까지, 세종M씨어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