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미술토크] 운명처럼 화가가 된 프리다 칼로

  • 조선닷컴 아트N

입력 : 2012.01.27 10:44

 
멕시코의 유복한 가정에서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예뻤고, 발랄했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그래서 15살에는 입학이 가장 어렵다는 멕시코 최고의 에스쿠엘라 국립학교에 진학했죠. 학교의 전교생은 2000명 이었습니다. 그중 여학생은 35명. 그녀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Frieda and Diego Rivera'
멋진 남자친구도 있었습니다. 첫사랑이었던 고메스 아리아스…
소녀는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면 됐고, 커서는 원하는 대로 유능한 의사가 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The Wounded Deer'
1925년 9월 17일 남자친구 아리아스와 하교하던 중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대형 사고를 발생했습니다. 이 끔찍한 사고로 일부 학생은 즉사했고, 그녀는 강철봉이 몸을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봉은 옆구리로 들어가 척추, 골반, 허벅지까지 손상 시켰죠.

'Tree of Hope, Remain Strong'
이 순간 18세 소녀의 모든 꿈은 날아 가버렸습니다. 소녀는 몇 일만에 깨어났지만 온몸에 깁스를 해야했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몇 차례의 수술로 집안은 어려워졌고 게다가 첫사랑마저 그녀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9개월간이나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녀가 평생 그린 그림의 반은 자화상입니다. 꼭 자화상이 아니라도 자신의 내면을 그렸으니 나머지도 어떤 면에서는 자화상이라 할 수 있죠.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나를 그린다.”

'Diego and I'
기적적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프리다 칼로는 한 남자를 찾아갑니다. 남자의 이름은 디에고 리베라. 그는 멕시코 최고의 화가였습니다. 그를 찾아간 이유는 어차피 화가로 살아갈 자신의 그림을 평가 받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21살의 프리다 칼로에게 두 번째 운명이 찾아옵니다. 사랑에 빠진 것이죠.

사실 디에고 리베라는 그녀와 21살이나 차이가 났고 두 번의 이혼경험에 아이까지 딸린 바람둥이였습니다. 하지만 프리다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결혼합니다.

'Self Portrait with Necklace of Thorns'

프리다는 화구를 들고 있는 남편을 자랑스럽게 그렸고 고개를 기울이며 살며시 남편의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새를 그렸죠.

하지만 우려대로 디에고의 여자관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사고이후 항상 육체의 고통에 시달리던 프리다는 이제 마음의 고통까지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후 아기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1954년 7월 13일 새벽 폐렴까지 얻어 고생하던 프리다 칼로는 자신이 태어났고 평생 살았던 멕시코의 푸른 집에서 그녀의 고통을 끝냅니다. 프리다 칼로의 일기 마지막에는 이런 글이 남겨 있었습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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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영상 제공 : 서정욱(서정욱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