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살자? 너희가 예술을 믿느냐

  • 런던=곽아람 기자

입력 : 2011.08.17 03:09 | 수정 : 2011.08.17 10:16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 데미안 허스트, 그의 도발적 인터뷰]
소머리·소심장… 구더기… 죽은 상어… 난 죽음 통해 희망 이야기 하는 예술가
내 작품이 왜 비싸냐고? 보는 순간 와! 하고 빵! 터지니까
데뷔 23년 만에 벌써 4500점 한 것 같아… "내 종교는 내 작품" 내달 3일 서울서 전시

"내 작품이 인기 있는 이유가 궁금한가? 예술에서는 '와!' 하고 '빵' 터뜨리는 효과가 중요하다. 내 작품이 그렇다.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서 화랑이나 미술관의 긴 설명이 필요가 없고, 관객들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등의 단순한 반응만을 보이면 된다."

지난달 런던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데미안 허스트(Hirst·46)는 문 뒤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미술가 제프 쿤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작가'로 불리는 이 영국 미술가는 작품만큼이나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는 1990년대 초 포름알데히드가 가득 찬 유리진열장 안에 모터를 연결한 죽은 상어를 넣어 움직이게 하고, 진열장 속에 구더기가 잔뜩 붙은 소머리를 집어넣고 구더기에서 변한 파리가 살충기에 의해 죽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악동 같은 모습에 미술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 작품을 본 사람들은 공포에 가까운 상태에 다다르지만 결국은 '희망'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허스트의 작품을 9월 3일부터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관람료 없음)에서 열리는 프랑수아 피노 컬렉션 특별전 'Agony and Ecstasy(고뇌와 황홀)'에서 볼 수 있다. 황소 심장을 포름알데히드에 넣은 '죽음의 키스'(2005) 등 작품 6점이 나온다. 프랑수아 피노는 경매회사 크리스티, 명품회사 구찌, 이브생로랑 등을 소유한 PPR그룹 회장으로 세계적인 컬렉터다.

아무도 그의 장난기를 꺾을 수 없었다. 부하 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스트는 굳이 160파운드(약 28만원)를 주고 샀다는‘신의 사랑을 위하여’모조품을 들고 사진을 찍겠다고 고집했다. 진품 가격은 5000만파운드(약 918억원)다. 벽에 걸린 그림은 허스트의 스핀(spin) 페인팅 연작 중 하나인‘녹색 그림 위에 아름답게 흩뿌려진 예쁜 앵무새’(2007). 사진은 지난달 허스트의 런던 사무실에서 찍었다. 배경 무늬는 허스트의 대표작‘도트 페인팅(dot painting)’의 색색깔 물방울을 응용했다. /런던=곽아람 기자
―어떻게 죽은 상어, 죽어가는 파리 같은 것을 보고 희망을 느낄 수 있나.

"'죽음'이란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죽음과 직면함으로써 오히려 삶이 더 빛난다고 생각한다."

―죽은 동물을 작품으로 써 '도살자'라 불린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난 자연사한 동물들만 쓴다. 동물이 죽으면 동물원에서 연락이 온다."

2008년 9월 런던 소더비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경매가 열렸다. 이 경매 이브닝 세일에서 머리 위에 황금 원반을 얹은 송아지를 포름알데히드에 넣은 '황금송아지'가 1035만파운드(약 203억원)에 낙찰된 것을 비롯해 출품작 56점이 모두 낙찰됐다. 7054만5100파운드(약 1471억6300만원)어치. 단일작가 경매로는 세계 기록이다. 허스트는 이 경매 이후 "더 이상 포름알데히드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진 왼쪽)2008년 9월 런던 소더비에서 열린 데미안 허스트 작품 경매 이브닝 세일에서 1035만파운드(약 203억원)에 낙찰된‘황금 송아지’. (사진 오른쪽)허스트의 2000년작‘찬가’. /블룸버그·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포름알데히드 작업이 트레이드마크 아닌가?

"자기복제를 그만두고 새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다. 기존 작품을 유지 보수하는 포름알데히드 작업 전용 스튜디오와 전속 스태프는 계속 둘거다."

―2006년부터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은 구상화를 그렸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항상 겪는 일이다. 1990년대 초 처음 '도트(dot·작가는 spot이란 표현을 썼다) 페인팅'을 시작했을 때도 사람들은 너무 유치하다고 했다."

―새 작업은 뭔가?

"앞으로 5년 내에 전시를 열 거다. 1000년 전 침몰한 배에서 인양한 보물을 전시한다는 개념이다. 산호 모양 조각을 만들어 케냐 인근 바다 속에 묻은 후 꺼내는 작업을 사진 촬영했다. 전시 전까지 이런 걸 계속할 거다. 사진,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조각을 모두 전시에 내놓을 생각이다."

허스트는 2007년 6월 개인전에서 백금으로 주형을 뜬 인간 두개골 형상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5000만파운드(약 918억원)에 내놓았다. 그에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작가'라는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은 이듬해 8월 허스트와 그의 전속 갤러리인 화이트 큐브, 익명의 다른 한 기관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팔렸다. 허스트는 "판매가 이루어졌지만 현재 내가 2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품 판매 여부를 헷갈려 한다"고 설명했다.


 

918억원짜리 해골… 허스트가 2007년 5000만파운드(약 918억원)에 내놓은‘신의 사랑을 위하여’. 백금으로 인간 두개골 모양을 만들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았다. /블룸버그

―당신더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작가'라는데?

"죽은 작가 중 가장 비싸다는 말보다 낫지."

―1년에 몇 작품 정도 하나?

"1988년 작가 활동을 시작한 이래 모두 4500점 정도 한 것 같다."

―다작(多作)이면 질이 떨어지지 않나?

"예술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미술관에서 아우라를 내뿜는 원본 '모나리자'와 많은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모나리자 엽서. 나는 그 두 가지 모두에 의미를 둔다."

―아들의 인체 모형 장난감을 본떠 만든 작품 '찬가(Hymn)'가 저작권 소송을 당하는 등 여러 번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미묘한 문제인데…. 먼저 허가를 구하면 일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일단 저질러놓고 해결해야 한다. 물론 대가를 치를 각오는 해야 하고."

―당신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나.

"나이가 들수록 두려워지는 것이 많아진다. 자식이 생기면서 죽음이 더 두려워진다."

허스트는 18년째 함께 살고 있는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16세·11세·6세 된 세 아들을 두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언젠가는 할 거다. 양가 부모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다. 교회도 별로 안 좋아한다."

―어린 시절엔 어떤 아이였나?

"말썽꾸러기였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서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다."

―문제아에서 훌륭한 아티스트가 된 것은 아트의 힘인가?

"범죄도 어떻게 보면 좀 창조적인 행위 아닌가. 범죄와 아트는 둘 다 규범을 뛰어넘는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하하."

―'죽음'을 다룬 작품이 매우 종교적인데, 종교가 있나.

"내 작품이 내 종교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어둠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만 나는 아트를 통해 찾는다. 종교 분쟁은 사람을 죽이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