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기에 더 깊은 울림내는 이들

  • 이태훈 기자

입력 : 2011.04.19 03:04

내일 첫 공연하는 시각장애인 국악단… "편견·생활고 딛고 꿈 펼칩니다"

앞을 볼 수 없기에 이들의 음악은 더 아름답다.

20일 서울 인사동에서 첫 단독 공연을 앞둔 '실로암 관현맹인 전통예술단'.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으로만 구성된 국악단이다. 지난주 개포동 연습실에 모인 단원 6명은 연습하는 내내 밝게 웃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김광섭(45·한양대 겸임교수) 예술감독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음악가에게는 음감과 박자감, 그리고 감동을 주는 '혼(魂)'의 3요소가 필요합니다. 국악에서 '혼'은 곧 '한(恨)'인데, 이들은 시련을 통해 자질을 닦아온 거죠."

실로암 관현맹인 전통예술단원들이 장애인의 날인 20일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단원들은 대부분 대학 등에서 전문 국악교육을 받았고,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생활고에 떠밀려 음악을 접어야 할 지경에 몰렸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것도 공통점이다. 그래서 '한번 모든 것을 걸어본다'는 의욕이 넘친다. 지난 2월 중순 오디션으로 선발돼, 두 달째 매주 절반쯤 숙식을 함께하며 연습에 매달려왔다.

혼자 KTX를 타고 대구~서울을 왕복하는 이민정(27·가야금 병창)씨는 "하루 6시간 이상 연습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목원대에서 국악을 전공한 그는 학창시절 학비를 버느라 하루에 4시간 넘게 자본 적이 없었다. 공연도 많이 했고,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도 탔다. 하지만 그건 학생 때까지의 이야기, 2008년 졸업 뒤엔 어디서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무대용 한복을 정리하고 가야금도 팔아버렸죠. 아예 이쪽은 돌아보지 않으려 했었죠." 그러던 중 맹학교 은사가 오디션 소식을 전해줬다. 올해 말 결혼할 예정인 남자친구는 "생활은 내가 책임질 테니 너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정가(正歌·가곡, 가사, 시조 등)를 맡은 이현아(23)씨가 '춘면곡(春眠曲)'을 부를 땐 연습실 방음벽까지 바르르 떨렸다. 이씨는 최고의 국악 콩쿠르에서 고등부와 일반부 은상을 받았고, 올 초 중앙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이 좌절된 뒤, 안마사가 되려고 맹학교 재입학까지 생각했었다. 그는 "딸 공부시키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첫 월급을 드릴 때 정말 기뻤다"고 했다.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던 대금 연주자 문종석(20·대구예술대 3)씨도 실로암 예술단에 참여하며 인생 계획을 바꿨다. 그는 "청중이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을 들려주겠다"고 했다.

'실로암 관현맹인 전통예술단'은 서울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최동익)이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시작한 '관현맹인 재현사업'을 통해 창단됐다. '시각장애인 악사는 앞을 볼 수 없어도 소리를 살필 수 있으니,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이 출발점이다. 김광섭 예술감독은 "워낙 자질과 실력이 출중해, 1년쯤 다듬으면 정말 뛰어난 국악단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첫 공연은 20일 12시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