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4.06 17:36

90년대 패러디 열풍
사회이슈 다룬 작품도
[이브닝신문/OSEN=김미경 기자] 19금(禁) 영화 인기 순위 터미네이터인줄 알고 빌렸다. 진짜다. 터미네이터 대신 포르노 패러디물 ‘터보레이터’를 대여점에서 우연찮게 집어든 남녀들의 얘기다. 처음엔 눈 씻고 봐도 정상은 없어 보인다. 인물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조리 변태스럽고 불편하다. 앗, 그런데 썩소를 날리다가도 이 황당한 설정이 이해가 되는 거다. 대여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19금영화를 고르고 있는 당신, 이쯤되면 즐기고 있는 셈이 된다. 이제 성은 음담패설이 오가는 술자리에서만 언급되는 소재가 아니다. 밖으로 나와 회자된다. 누군가 섹스라고 말할 때 화들짝 놀라지 않게 됐고, 작품 속 노골적인 성행위에 눈을 질끈 감는 일도 드물어졌다. 수위는 낮췄고 정통 포르노나 거짓말 등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들은 순위에서 제외했다. 여전히 인기순위 상위에 올라와 있는 19금영화 명물들이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입니까? 엔드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반응은 한결같이 두 갈래로 나뉜다. “뭐야 XX” vs “죽이는데!”라는 극명한 대조다. 당신이 전자에 속한다면 이 지면을 재빨리 스킵해도 좋다. 하지만 취향은 변하는 법. 에로영화의 흐름을 알아두는 것도 모임의 얘깃거리로 나쁘지 않다.
7080 숨겨진 욕망=한국 에로영화는 보통 70년대 ‘여자’ 시리즈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베스트셀러의 각색, 멜로물이 붐을 이뤘던 시기로 ‘별들의 고향’ 이후 ‘삼포가는길’ ‘타인의방’ 등이 연이어 공개됐다. 80년대는 암울한 시대상과 규제 탓에 사극을 빙자한 에로물이 흥행했다. 금기된 것들을 파기하는 에로가 넘쳐났다. 때문에 여성의 육체를 눈요깃거리로만 소진하는 영화가 많았다.
90년대 패러디에로 봇물=90년대 들어선 비디오의 보급과 경제성장 등으로 에로물의 수요가 늘고 여성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의 성이 그려졌다. 특히 가정주부의 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늘어났다. 사회관습에 대한 나름의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80년대 에로영화들과 차별화된다. 한편으로는 본격적인 포르노물이 양성되는 시기다. 쉬리의 빅히트로 한국영화가 양적으로 팽창하자 에로비디오 제목도 패러디 열풍에 빠졌다.
비디오가게를 20여년간 꾸려온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 O비디오대여점 주인 곽모(45)씨는 수많은 패러디에로물 중 단연 터보레이터를 꼽는다.
곽모씨는 “터미네이터를 패러디한 이 영화는 과거 비디오업계에서도 대여금지 영화로 알려졌다”면서 “비디오가게마다 대여기간 이틀, 대여금지라는 조치로 찾는 사람들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고 회상했다.
국내물도 있다. KBS에서 방영하던 대하사극 용의눈물을 패러디한 용의국물이 그것. 공동경비구역 JSA의 큰 흥행은 이후 공동섹스구역 JSA, 공동경비구멍이라는 패러디물로 이어졌고 △용가리-뿅가리 △간첩 리철진-여간첩 리철순 △박하사탕-박하사랑(참고로 이영화의 주인공은 박하사) 등이 등장했다.
외국영화도 패러디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니모를 찾아서-니 이모를 찾아서 △황혼에서 새벽까지-황홀해서 새벽까지로 이어졌다. 인기 드라마 역시 △허준-헉! 준 △왕꽃 선녀님-밤꽃 선녀님 등으로, 광고 역시도 패러디 대상이 됐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침대는 움직이는 거야 △선영아 사랑해-선영아 나랑해라는 재밌는 제목의 영화가 탄생됐다.
사실 제목만 그럴싸하지 내용은 (성에 굶주린 중고생이라면 몰라도) 금방 질릴만큼 단순하고 지루한 구성이 대부분이다.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와 열악한 제작환경으로 다 보이는 화면, 웃지못할 장면들이 많다.
사회적 이슈도 양상=표현의 자유가 확대되고 성 묘사가 대담해지면서 각종 사회이슈마저도 에로영화의 소재와 제목으로 쓰였다. △옷 로비 사건-몸 로비 사건 △고문기술자 이근안-고문녀 이근순 △탈옥수 신창원-탈옥녀 신창순 외에도 주옥같은 패러디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보급 수단이 테이프에서 인터넷으로 바뀌면서 성인물을 빌리려는 사람도 줄었다. 성인 남성의 절반이 보았다는 ○양 시리즈만도 온라인상에서 떠돌며 며칠 만에 급속도로 퍼졌다.
황당무계한 스토리지만 창의력만큼은 속된 말로 진짜 쩌는 19금영화. 요즘이야 비디오대여점도 많이 줄었고, 자극적이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한 하드코어 포르노도 집에서 마우스클릭 몇 번으로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몰래 빌려 돌려보던 그 조악한 비디오,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립다.
kmk@ieve.kr /osenlife@osen.co.kr
<사진>포르노는 성에 대한 판타지일는지도 모른다. 욕망, 호기심,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알은 체 한다. 전시가 인사동길 갤러리 더포에서 열리고 있다. 3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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