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像 배에 넣는 유물, 佛畵 뒤에도 붙였다

  • 허윤희 기자

입력 : 2010.10.27 04:42

'아미타독존圖'서 발견… "예배의 대상"
'고려불화대전' 국제학술심포지엄 열려

흔히 불상(佛像)을 만들어 봉안할 때 뱃속에 넣는 복장(腹藏) 유물이 고려불화 뒤쪽에 부착된 사례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이 28일 오전 10시 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하는 '동아시아 불교회화와 고려불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박은경 동아대 교수는 "일본 교토 쇼보지(正法寺) 소장 '아미타독존도'의 1999년 수리보고서에 따르면 화면 뒤쪽의 배접지를 제거하자 아미타여래상의 가슴 부근에 붙어 있는 종잇조각이 발견됐고, 거기에는 지름 10.6㎝ 크기의 원형을 중심으로 외곽에 보협인다라니경(經)이 범어(梵語·산스크리트어)로 적혀 있었다"고 발표한다. 박 교수는 "복장물은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오장육부(五臟六腑)와 같은 것으로 이는 고려시대 불화가 불상처럼 예배의 대상으로 모셔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림 뒤에서 복장 유물이 발견된 일본 교토 쇼보지(正法寺) 소장 고려불화‘아미타독존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1월 21일까지 계속되는 《고려불화대전》의 학술행사로 마련된 이번 심포지엄은 동아시아 불교회화의 흐름 속에서 고려불화의 아름다움과 독자성을 조명하는 자리다. 국내 학자 4명과 외국 학자 4명이 참가해 논문을 발표하며,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종합토론도 열린다.

김정희 원광대 교수는 '고려불화의 발원 시주자'라는 논문에서 "고려불화의 발원 시주자는 왕실, 관인(官人), 승려, 향도 및 개인 등으로 다양하며, 특히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을 대신해 후기에 부상한 권문세족(權門勢族)과 지방의 향도조직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힌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불화 160여점 중 명문(銘文)이 남아 있는 작품은 30여점이고, 그중 발원 시주자를 알 수 있는 작품은 20점 정도다. 김 교수는 "고려 후기의 기복불교적 성격이 불화를 통해 복을 빌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풍조를 낳았던 것"이라고 해석한다.

국내의 대표적 고려불화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는 고려불화의 핵심인 표현기법과 도상(圖像)을 중심으로 고려불화의 독자성을 소개한다. 정 교수는 "고려불화의 채색이 붉은색·녹청색·군청색 등 모든 안료를 섞지 않고 원색을 고집한 이유는 금선(金線)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며 "고려불화에 있어 금(金)은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도구였다"고 강조한다.

이 밖에 일본의 고려불화 및 중국 송·원대 불화의 권위자인 이데 세이노스케(井手誠之輔) 규슈대 교수,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등이 발표자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