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미술토크] 자포니즘과 우키요에

  • 글·컨텐츠·사진 제공_서정욱

입력 : 2010.06.03 14:19

반 고흐의 작품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과 '탕기영감의 초상'입니다. 고흐만의 터치감과 특유의 인물 표현이 매우 잘 된 작품입니다.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1889 Oil on canvas(좌)/Portrait Of Pere Tanguy 1887 Oil on canvas(우)

그런데 한번 배경을 보세요. 놀랍게도 네덜란드 화가인 반 고흐의 그림 뒤에 일본풍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사실 고흐 배경의 그림은 일본 우키요에 입니다. 유키요에는 일본회화이고 그는 우키요에의 열렬한 팬이었던 거죠.

인상파화가였던 반 고흐!  그렇다면 당시 우키요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화가는 단지 반 고흐만 이었을까요?

1854년 일본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일본 공예품들이 유럽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유럽인들은 일본 문화에 큰 관심을 갖게 되죠.

그 후 일본문화는 서양의 미술, 공예, 조각, 생활양식 등 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1856년 어느 날 화가 브라크몽은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기 포장지의 그림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그 그림은 우키요에였습니다.

우키요에란 일본 에도 시대 말부터 메이지 시대 (14~19C)에 유행했던 풍속화 양식을 말합니다.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채와 단순한 구성, 뚜렷한 윤곽선, 입체감이 거의 없고, 검은색을 풍부히 사용 것이 특징입니다. 주로 일상의 모습, 풍경, 창부 등이 소재구요,  목판화로 제작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신문이나 잡지 포스터, 포장지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우키요에가 결국 도자기 포장지로 유럽에 소개되는 상황이 벌어 진거죠.

어쨌든 이 우키요에는 인상파화가들의 눈을 단번에 매료 시킵니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기존의 미술을 탈피할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발견한 동양의 이국적인 이미지 우키요에 이것은 그들을 전통미술에서 해방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네의 '에밀졸라의 초상'입니다.

Portrait d_Emile Zola 1868 Oil on canvas, 146 x 114 cm Musee d_Orsay, Paris

졸라의 모습 뒤에 붙여놓은 우키요에가 보이시죠. 당시 화가들은 우키요에를 수 백점씩 수집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모네는 일본풍 기모노를 입은 아내를 그림에 등장시키고 일본소품을 그렸습니다.

monet_Madame Monet in a Japanese Costume 1875Museum of Fine Arts, Boston
또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는 작품에 기모노와 병풍, 우키요에까지 다양하게 등장 시킵니다.

Rose And Silver The Princess From The Land Of Porcelain 1864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즉, 직접적으로 일본풍을 드러낸 화가도 있었고 자신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은 꼭 일본 이어서라기보다는 동양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무튼 우키요에 회화가 당시 유럽미술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류 속에서 일본미술 또한 유럽미술의 원근법과 세밀한 명암처리, 그리고 다양한 색상에 대한 영향을 받는 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 일본 중 가장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의 풍속화가 서양에 먼저 전해졌다면 어떤 서양미술이 등장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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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영상 제공 : 서정욱 갤러리 대표 서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