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그녀의 붉은 꽃, 피보다 진하다

  • 손정미 기자

입력 : 2010.03.01 23:26 | 수정 : 2010.03.01 23:27

루이스 부르주아 'Les fleurs'展
멀고도 가까운 저 가지처럼…
애잔하며 잔인한 관계, 가족
단순함에 깃든 大家의 카리스마

루이스 부르주아의〈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어!!!〉./국제갤러리 제공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개인전 《Les fleurs(꽃)》 전시장에 들어서면 핏빛에 가까운 붉은색 꽃들이 들어온다. 올해 한국 나이로 100세를 맞은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화가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드로잉 작품으로, 대가(大家)의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1911년 파리에서 태어난 부르주아의 인생과 예술은 작가의 불행했던 가정사와 맞물려 있다. 어려서 아버지의 외도를 보고 자란 부르주아에게 가족은 사랑과 함께 고통을 주는 존재였다. 여덟살 때 식탁에서 흰빵으로 아버지의 형상을 빚을 만큼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평생 지속됐고, 예술의 원천이기도 했다.

부르주아는 소르본 대학에서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기하학을 전공했는데 여기에는 비극적인 가족관계가 깔려 있다. 예측 가능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 기하학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예술에 눈을 돌려 새로운 피난처로 삼았다. 부르주아는 거미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 〈마망〉에 대해 "어머니에 대한 송가(頌歌)"라고 할 만큼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각별했다.

부르주아는 몽마르트르 등에 흩어져 있던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배우다 페르낭 레제로부터 조각에 입문할 것을 권유받았다. 부르주아는 이후 미국인 남편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벌였다. 파리에서 구(舊)유럽의 마지막 황혼기를 경험했던 부르주아는 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부상하는 뉴욕에서 영감과 에너지를 얻게 됐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드로잉전《Les Fleurs(꽃)》에 전시 중인 작품. 부르주아는 붉은 꽃을 통해 피를 나눈 관계와 사랑·열정·욕망을 표현하고 있다./국제갤러리 제공

그는 1966년 뉴욕에서 에바 헤세와 브루스 나우만 등과 함께 미술사에 기록된 《기이한 추상전(展)》에 참가했으며, 1982년에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1993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 대표로 참가했고 19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올해도 스위스 바이엘러미술관 등에 전시가 잡혀 있는 등 현역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평생 여성과 가족을 작품 테마로 잡아왔지만, 이성주의 철학과 기하학을 바탕으로 두 가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구상과 추상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이번 서울 전시는 부르주아가 최근 3년 동안 작업한 드로잉 24점과 조각 3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거의 매일 뉴욕 자택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부르주아에게 드로잉은 독립적이면서도 조각의 무의식이랄 수 있다. 붉은색 꽃을 들여다보면 5개의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가족을 표현한 것으로 자신과 남편, 세 아들을 표현하고 있다. 뿌리는 하나지만 거리를 두고 각자 존재하는 모습을 통해 핏줄의 애잔함과 관계에서 빚어지는 잔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작가에게 있어 꽃은 인간의 희로애락이 깃든 삶과 사랑을 표현하며, 붉은색은 관계와 열정·욕망을 드러낸다. 인간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을 단순한 선을 통해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또 작품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어!!!〉에서 보이는 칡넝쿨 같은 거친 가지를 통해 생명의 강인함과 무한함을 나타내고 있다. 〈어머니와 아이〉에서는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간결하면서도 강하게 묘사하고 있다. 부르주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러 전시장 바깥 정원에 설치한 조각 〈마망〉은 이번 전시의 보너스라고 할 수 있겠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