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만나 로맨틱 코미디처럼 살죠"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01.27 23:16 | 수정 : 2010.01.27 23:17

연극 '호야' 공연 중인 극단 '죽도록달린다'의 서재형·한아름 부부
남편은 연출·아내는 극작가 티격태격하다 정들어 결혼까지…
LG아트센터 상주단체로 뽑혀 "실험 줄이고 품 넓은 연극 할 것"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 중인 《호야(好夜)》는 형식부터 특별하다. 배우들이 단체로 뜀박질하는 장면이 많고, 지문(地文)과 해설까지 들려준다. 이를 통해 거친 호흡과 땀, 등장인물의 심리를 펼쳐보이는 것이다. 처음엔 낯설고 이물감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궁궐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사랑의 풍경을 포착하는 이 연극은 일단 그 리듬에 올라탄 관객에겐 곱절의 재미를 안겨준다.

《호야》를 만든 극단 '죽도록달린다(죽달)'는 서재형(40·연출가), 한아름(33·극작가) 부부가 이끌고 있다. 서로를 '한 작가' '연출님'이라 부르는 이들의 최근 질주는 눈이 부시다. '죽달'은 국내 최고 공연장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 LG아트센터 상주단체로 선정됐다. 부인 한씨는 안중근을 그린 뮤지컬 《영웅》으로 주목받았고, 남편 서씨는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을 통합해 2월 출범하는 대학로공연예술센터의 예술감독(연극 분야)으로 내정됐다.

“배우들만 시키지 말고 연출과 작가도 뛰어 보라”고 했더니 이런 포즈가 나왔다. 왼쪽이 극작가 한아름, 오른쪽이 연출가 서재형./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죽달'은 오는 4월 LG아트센터에서 신작 《토너먼트》를 초연하고, 가을에는 두산아트센터에서 뮤지컬로 바꾼 《왕세자 실종사건》을 공연한다. 서재형은 "이제 형식 실험은 줄이고 기본으로 돌아가겠다"며 "희곡·배우·관객에 집중해서 '품이 넓은 연극'을 하겠다"고 했다. 질주하는 몸들로 무대를 채운 《죽도록 달린다》(2004)나 느린 움직임으로 시간을 늘어뜨린 《왕세자 실종사건》(2005) 같은 화법이나 습관과 이별하겠다는 선언이다.

극단 물리의 조연출이던 서재형은 연출 '입봉(데뷔)'을 모색하던 2002년 한아름을 만났다. 곱창 먹고 노래방까지 갔지만 서로 첫인상은 빵점이었단다. '쯧쯧, 저런 사람이 무슨 연출(글)을….' 함께 작업을 하면서는 배우의 동선(動線)과 대사 한 줄을 놓고도 다퉜다. '더는 안 볼 사람'으로 정리하고 헤어졌는데, 예술의전당에서 "《왕세자 실종사건》을 다시 공연하자"는 연락이 오면서 둘의 관계도 급회전했다.

"차로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연출님이 덜컥 '진지하게 사귀어 봅시다' 하는 거예요. 차를 박을 뻔했어요."(한아름) "마음속으로 '빨래'가 다 끝난 거죠. 일사천리로 결혼했습니다."(서재형)

연극《호야》에서 배우들이 뜀박질하는 장면./죽도록달린다 제공

이들은 요즘 신작 《토너먼트》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산을 타다 추락해 더는 산을 오를 수 없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한아름은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희망의 이야기"라며 "누구에게나 '산'이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LG아트센터는 연극을 하기에는 큰 극장이다. 서재형은 "우리끼리는 '강남 지방공연'이라며 부담감을 덜어내고 있다"고 했다.

'죽달'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노력하는 창작 본능을 보여주겠다며 2006년 창단했다. 서재형은 "올해부턴 내 어머니까지 보고 즐길 수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아름이 거들었다. "저는 나중에 아이들만 아는 연극을 하려고 합니다. 요즘 아동극은 엄마들만 알고 정작 아이들은 모르는 것 같아요."

《호야》에서 남녀 주인공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하루 24시간 한배를 타고 가는 서재형·한아름을 보니 그 연극 속 대사 한 줄이 초고속으로 달려왔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 마라, 내 너와 함께할 것이다."

▶《호야》는 31일까지 남산예술센터(옛 드라마센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