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의 지형이 바뀐다] [下] "우물 안에선 죽는다" 국경 넘는 갤러리

  • 손정미 기자

입력 : 2010.01.05 03:19

글로벌 시대 화랑의 변신
베이징·뉴욕에 지사 세우고 소속 작가 해외에 적극 홍보
"컬렉터 눈높이 날로 높아져 국내 전시도 수준 맞춰야" 대형 기획·비즈니스 확대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표갤러리에서는 베이징LA를 동시에 연결하는 영상회의가 열렸다. 서울 이태원과 청담동 표갤러리를 중심으로, 표갤러리 베이징과 표갤러리 LA의 팀장과 직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베이징에서는 오는 5월 현지에서 개최할 이승구 전시와 중국 신인작가 리서치에 대해, LA에서는 1월 개최할 박성태와 이용덕 전시에 대해 보고했다. 한·중·일을 연결하는 영상회의는 2006년 베이징, 2008년 LA에 해외 지점을 세운 뒤 시작됐다.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는 "해외 갤러리들과 경쟁하고 우리 작가를 알리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화랑들이 글로벌 시대를 맞아 미술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미술품 거래가 국경 없이 이뤄지는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신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은 대형 화랑들이 해외의 화랑을 비롯해 미술관·평론가·컬렉터와의 국제적인 네트워킹이 중요해지면서 해외에 지사(支社) 성격의 갤러리를 열거나 소속 작가 해외 프로모션에 적극 나서는 것이다.

가나아트는 작년 뉴욕에 갤러리를 열었고, 아라리오갤러리는 2005년과 2007년 각각 베이징과 뉴욕에 갤러리를 열었다.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미술과 소통하기 위해 베이징에 갤러리를 열었다"면서 "뉴욕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쌓는 등 배울 점이 많다"고 밝혔다.

표갤러리의 표미선 대표가 한·중·미를 연결하는 영상회의를 주재하면서 미국 LA지사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국제갤러리는 지난해 6월 베니스 페기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해외 미술계 인사들을 초청한 리셉션의 스폰서를 맡았다. 국제갤러리 소속이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였던 양혜규를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하기 위해서였다. 리셉션에는 카네기미술관과 MoMA(뉴욕현대미술관) 관계자 등이 참석했고, 카네기미술관은 양혜규의 작품을 소장하기로 했다.

중소 화랑들은 비즈니스의 범위를 넓히거나 대형 기획에 나서고 있다. 1992년 대구에서 문을 연 신라화랑은 작년에 '아트 프로젝트 앤 파트너스'로 화랑 이름을 바꾸었다. 이광호 대표는 "화랑은 단순히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새 비즈니스를 모색해야 한다"면서 "자체 전시뿐 아니라 외부 전시 기획과 기업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 리안갤러리는 3년간 준비 끝에 지난해 세계적인 영국 작가 데미언 허스트의 전시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리안갤러리는 2008년 백남준전(展) 때는 미국의 제임스 코헌 갤러리·앤드루 셰어 갤러리·맥스 랭 갤러리에서 작품을 들여오는 등 정성을 기울여, 국내 화랑에서 열린 대표적인 백남준 전시 중 하나로 꼽혔다. 컬렉터 출신인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컬렉터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어 국내 화랑들도 수준 높은 전시를 기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식 경희대 미대 교수는 "그동안 화랑들이 컬렉터들의 수준에 따라가지 못한 면이 있었다"면서 "이제 화랑들도 달라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