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지휘봉을 쥐다… 스물 다섯 세계를 휘젓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10.08 03:09 | 수정 : 2009.10.08 03:23

서울시향 지휘하는 베네수엘라 출신 디에고 마테우스
클래식계 떠오르는 新星 "9세부터 악기 가르쳐준 '엘 시스테마 운동' 덕분"

10일 서울시향의 지휘봉을 잡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청년지휘자 디에고 마테우스(Matheuz·25)는 교사 집안에서 태어난 평범한 소년이었다. 어릴 적 기타를 닮은 네 줄짜리 민속악기인 콰트로를 아버지에게 배워 갖고 놀았다. 1970년대부터 베네수엘라에서 일기 시작한 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El Sistema)'에 따라, 마테우스도 9세 즈음부터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엘 시스테마 운동의 성공으로 베네수엘라는 현재 200여개에 이르는 어린이와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활동하는 '음악 강국'이다.

"처음엔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죠. 그런데 한 달 뒤 아버지께서 '첼로는 차에 싣고 다니기 힘드니, 바이올린으로 바꾸려무나'라고 말씀하셨어요."

고향인 바르키시메토와 수도 카라카스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마테우스는 2005년 '엘 시스테마' 운동의 주창자이며 문화부 장관을 지낸 호세 아브레우(70) 박사를 만났다. 박사는 약관을 갓 넘긴 청년에게 꿈을 물었고, 청년은 조심스럽게 '지휘자'라고 답했다. 그때부터 노인과 청년의 음악교습이 시작됐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20대 지휘자 디에고 마테우스가 7일 서울시향과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을 리허설하고 있다. 마테우스는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운동인‘엘 시스 테마’에 참가해서 세계 유수의 악단과 호흡을 맞추는 지휘자로 성장했다./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박사님은 너무나 바쁜 일정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시간을 낼 수는 없었어요.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꼬마야, 지금 공부할 시간 있니?'라고 물으셨고, 저는 통화를 마치는 대로 뛰어가 수업을 받았지요."

베네수엘라의 대표적 청소년 악단인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어린이와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그에게 본격적인 지휘 기회가 찾아왔다.

베를린 필의 현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이 베네수엘라에 찾아와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연습하던 도중, 그에게 "음악을 들어보고 싶으니 네가 직접 지휘해 보렴"이라며 지휘봉을 넘겼다. 마테우스가 지휘 도중 오른팔이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자, 베를린 필의 전 음악감독인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그럼 왼손을 쓰면 되지 않겠니?"라고 위트 있게 조언했다.

마테우스는 이들 거장과의 만남을 통해 올해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을 잇달아 지휘할 기회를 잡았다. 지난달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가 연주를 취소하자, 카라카스에서 로마로 직행했다. 그는 "갑자기 아침 7시 로마에서 지휘해달라는 전화가 걸려와서 '일단 잠에서 깰 수 있게 20분만 시간을 주시겠어요?'라고 답했어요. 그 뒤 곧장 5시간 차로 달리고, 9시간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향했지요"라며 웃었다.

그와 같이 '엘 시스테마' 운동의 영향을 받은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 ·28)은 미국 명문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올해 취임했으며, 에딕손 루이즈(Ruiz·24)는 17세에 베를린 필의 최연소 더블베이스 단원으로 입단했다. 마테우스는 "두다멜은 10세 즈음부터 어린이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같이 연주하고, 축구도 함께했다"고 했다. 그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쥐여주고 음악을 가르친 '엘 시스테마'를 통해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믿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향 연주회, 1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3700-6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