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9.29 06:06
75세 정문규 화백, 말기 위암 이기고 개인 미술관 열며 창작활동
시한부 선고받은 후에도 15년이나 더 살고있어…
사람들이 내 그림 보러 찾아오는 것 자체가 좋아
"어떻게 지금까지 몰랐단 말입니까. 위암 말기입니다. 수술이 아무리 잘돼도 2년 넘기기 힘들 겁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종합병원 의사는 그에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했다. 하루 10시간씩 그림 그리느라 아픈 줄 알고 먹었던 진통제 탓에 암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5일 후 그는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60살을 바라보던 정 화백에게 항암 치료는 쉽지 않았다. 75㎏이었던 몸무게는 1년 넘게 항암치료를 받으며 60㎏이 됐고 치아와 머리카락도 모두 빠졌다. 4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는 일주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정 화백은 오로지 붓을 다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고통을 참고 또 참았다.
항암치료가 끝난 후 정 화백은 2년 동안 하루 세 끼를 암에 좋다는 된장만 먹어가며 하루 5~6시간씩 운동을 했다. 1995년 가을 정 화백은 암 완치를 통보받았다. 조각가인 막내아들 종산(46)씨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 의사가 길게 잡았던 시한보다 15년을 더 살았고 지금도 건강에 별문제가 없다. 지난 6월에는 안산시 대부도에 3층짜리 미술관도 열었다. 개관한 지 이제 막 100일이 지났다.
"내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미술관을 가지는 게 평생 꿈이었어. 하루에 10명도 안 와. 그래도 10명이라도 와서 내 그림 보고 간다는 것 자체가 좋아."
정 화백은 1934년 경남 진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인 교장이 전교생 앞에서 "정문규는 나중에 동경예술대학에 가서 그림을 배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동네에서 소문난 '환쟁이'였다. 정 화백은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사범학교에 진학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2년 동안 교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 홍대 미대에 입학했다.
"전업작가는 꿈도 못 꿨지, 극장 간판 그림 그리던 동기도 있었으니까. 난 낮에는 마포 근처 2평짜리 가게에서 애들한테 군것질거리 팔고, 밤에 그림 그렸어. 62년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우리 학교 교수들이 와서 보더니 '학교로 와라'고 하더라고. 진짜 '화가'가 된 거지."
그때부터 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30년 동안 정 화백은 일주일에 16시간씩 강의를 하면서 1년에 50~60편의 그림을 그렸다. 개인 전시회도 20번 넘게 열었다. 미술공부를 더 하기 위해 68년과 80년에는 일본과 프랑스에 유학하기도 했다.
미술관에는 총 100여점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2층과 3층에 전시관이 하나씩 있다. 2층은 데뷔 초기에서 투병 생활 전까지의 그림이 걸려 있고, 3층에는 붓을 다시 든 이후의 작품들이 있다. 두 전시관의 그림은 완전히 다르다. 2층에는 사람의 인체를 스크래치 기법(캔버스에 칠해진 물감을 칼로 긁어내는 표현방식)으로 표현한 무채색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3층은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 등의 원색을 사용해 꽃과 나무 등 자연을 묘사한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정 화백은 "아프기 전에는 그림 하나 그리는 데 몇 달씩 걸릴 정도로 고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주위 환경을 보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옮긴다"며 "그때 그림이 예술적으로는 더 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