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축받고 무대 위로…시각장애 20세 청년의 피아노연주 '전율'

  • 조선닷컴

입력 : 2009.06.08 15:25

약관 20세의 일본인 피아니스트 츠지 노부유키(辻井伸行)에겐 피아노 건반이 온통 검은 것들 뿐이다. 하얀 건반의 존재는 말로만 전해 들었다. 엄마 뱃속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를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츠지가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하며 인간 승리를 이뤄냈다. 츠지는 8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바스 홀(Bass Hall)에서 폐막된 제13회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중국의 장 하오첸(19)과 함께 공동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준우승은 한국의 손열음(23)에게 돌아갔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이 콩쿠르는 1962년부터 4년마다 열리며 미국 최고의 피아노 경연 대회로,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로는 1973년 주디스 워커(Walker)가 본선에 진출했으나 2차 심사는 통과하지 못했었다.

7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포스워스에서 열린 '2009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쿨'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손열음(왼쪽)양이 금메달을 수상한 일본의 시각장애우 피아니스트 츠지 노부유키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콩쿨은 차이코프스키 콩쿨과 대등한 수준의 권위있는 콩쿨이다. /뉴시스
츠지는 6일 결선에서 지휘자 제임스 콘론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위에 올라섰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츠지는 지휘자나 오케스트라에 눈 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어차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독주(獨奏)를 쉬는 동안에도 건반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건반을 일일이 짚어가며 다음 소리 낼 음을 찾아내 준비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선율은 콩쿠르 대회장을 메운 2000여 명의 청중과 인터넷 생중계를 보고 있던 전 세계 수십만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츠지는 4세 때 어머니가 건네준 쇼팽의 폴로네에즈 음반을 듣고 장난감 피아노로 연주를 시작했다. 하루 4~8시간씩 연습을 거르지 않으며 7세 때 일본 시각 장애 학생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12세에는 도쿄 산토리 홀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18세 때인 2007년 일본의 에이벡스(AVEX)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두 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이 것을 계기로 이번 콩쿠르에 출전하게 됐다. 츠지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팜플렛의 연주자 소개란에 “음악 앞에서는 어떤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믿음”이라고 썼다.

한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발굴한 영재 출신의 손열음은 이날 준우승과 함께 최고 실내악 연주상을 수상해 세계적 반열에 올랐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콩쿠르의 한국인 입상은 2005년 2위에 올랐던 조이스 양(한국명 양희원)에 이어 두 번째다.

손열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교수를 사사한 손열음은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의 아리에 바르디 교수 문하에서 공부하고 있다. 손열음은 1997년 차이코프스키 청소년국제콩쿠르 최연소 2위, 비오티 국제콩쿠르(2002) 1위, 루빈스타인 국제콩쿠르 3위 등에 입상하며 주목을 받아왔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냉전시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미국인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시작돼 4년 마다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