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품은 이미지… 한국형 '드라마틱 팝아트'의 출현

  • 김한수 기자

입력 : 2008.08.05 03:06

일상의 흔한 이미지에서 이야기의 한 토막 읽는 느낌
젊은 영국작가들 'yBA'처럼 현대 미술계 총아 되나

윤현정씨의 유화 <가족_바나나>
'《아시아프》는 21세기 '한국형 yBA(젊은 영국 작가들·Young British Artists)'의 요람이 될 것인가?'

《아시아프》개막을 앞두고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yBA'는 1980년대 후반 등장해 1990년대를 거치며 세계 미술계 최고의 기린아로 떠오른 영국 출신의 작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생존 작가 중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싸다고 하는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해 올해 가나아트센터에서 첫 한국 개인전을 열었던 마크 퀸, 학고재에서 작품을 선보인 이안 다벤포트 등이 대표적 yBA 작가로 불린다. 이들이 세계 미술계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88년 《프리즈(Freeze)》 아트페어였고, 영국의 세계적 컬렉터인 찰스 사치 등의 후원을 받으며 세계 미술시장에 화려하게 얼굴을 알렸다.

이들은 센세이셔널한 작품으로 기존의 미술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켰다.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 죽은 상어를 수조에 넣은 '상어' 등을 선보이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마크 퀸은 자신의 혈액을 정기적으로 채혈(採血)해 얼려서 자신의 두상(頭像)을 만들고 있다. 일견 끔찍하고 잔인한 느낌을 주는 이들 '작품'은 그러나 미술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파괴하면서 가격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박은미씨의 유화 <응큼한 기린씨>(왼쪽), 구명선씨의 연필화 <누군가 날 보고 있어>(오른쪽).
미술계가 《아시아프》에 주목하는 이유도 777명의 작가들이 yKA(Young Korean Artists) 혹은 yAA(Young Asian Artists)로 그룹화되고 계속 성장해나갈 수 있을지 그 여부 때문이다. 실제로 《아시아프》 출품작들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오광수 심사위원장은 포트폴리오 심사를 마친 후 "기성세대와 뚜렷이 구분되는 '새로운 지층(地層)'을 발견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들이 yBA처럼 쇼킹하고 '과격'한 작품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777명의 출품작가는 국내의 전국 곳곳에서, 멀게는 아시아 각국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가꿔가고 있었지만 막상 이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보니 몇 가지 경향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팝아트(Pop Art)적 요소 ▲구상(具象)의 약진 ▲긍정적·낙관적 태도 등으로 요약된다.
이계원씨의 사진 <동화 프로젝트-파랑새Ⅱ>
가령 출품작들에선 마릴린 먼로 등 대중스타, 미키 마우스 등 만화와 말(語)풍선, 특정 상표의 맥주병 같은 대량생산된 공산품 그리고 인형, 화분 등 인공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팝아트(Pop Art)적인 요소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아파트, TV, 도심의 빌딩군(群), 도시 뒷골목, 공중전화 부스, 에스컬레이터, 침대가 놓인 침실 풍경 등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미지들도 다수 눈에 띈다. 이 같은 일상 이미지들이 정확한 묘사력을 통해 표현되고 있어 마치 각각의 작품들은 이야기의 한 토막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출품작들의 이 같은 경향에 대해 유진상 《아시아프》 전시 총감독은 "전시작품들은 '드라마틱 팝아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팝아트는 상품과 상표, 일본 팝아트는 망가(만화의 일본식 표현)와 전통 목판화인 우키요에에 뿌리를 두고, 중국 팝아트는 전통 인물화와 아픈 근대사를 냉소적으로 다루는 정치적 팝아트라면 《아시아프》의 한국 작품들은 한국적인 이야기(스토리)에 대한 선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경험의 작은 부분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앞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안유진씨의 사진 <패트릭과 개럿>(위), 이정훈씨의 사진 <비 오는 날>(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