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안(鄕岸), 향안, 그리운 향안…"

  • 김경은 기자

입력 : 2008.07.21 03:06

여름방학 맞아 '김환기 그림전' 열려
초등학생위한 탁본 뜨기 등 프로그램도

"鄕岸 鄕岸 향안 향안 향△ㅏㄴ 향안 햐ㅇ안 향안…. 그리운 향안, 부디 몸 조심해요."

1964년 1월29일 화가 김환기(1913~1974)는 뉴욕 작업실에 홀로 앉아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키가 190㎝에 가까웠던 그는 155㎝인 아내 앞에서 항상 어린애가 됐다. 결혼한 지 만 20년이 되고도 색색의 볼펜으로 편지지 가득 아내의 이름을 적었다.

김환기의 50~60년대 작품과 유품을 모은 《해와 달과 별들의 얘기3―김환기 자연을 노래하다 전》이 9월 13일까지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열린다. 유화 20여점, 드로잉 80여점, 편지그림 30여점, 유품과 기록사진 등이 '둥근 달과 백자 항아리' '산과 달의 울림' '자연을 담은 글씨그림' '밤새워 속닥속닥 편지그림' 등의 주제로 전시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을 위해 '탁본 뜨기' '문패 만들기' 등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달콤한 애처가'의 면모가 물씬 묻어나는 편지그림이다. 그는 편지를 쓸 때 그림을 함께 그렸다. 자기 작품 중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는지 봐달라고도 했다. "빨리 와서 그림을 봐 줘요. 내 그림에 감동이 됐다가도, 가다가는 회의가 생기고 그래요."
김환기는 편지에 그림을 그려 넣으며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아 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환기미술관 제공

그는 편지에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아내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았다. "빨리 와서 본인을 갈구어주시오"로 시작해 "밖은 꽤 추운데 방 안은 짤₂(짤짤) 끌어요" "오늘은 하두 심₂(심심)해서 이런 것(감과 앵두) 사다 먹었지"로 이어지는 편지도 있다. 곱슬머리에 듬성듬성 수염 난 자화상을 그려 놓고 "이 수염 난 친구 누군 줄 아나? 아주 好男(호남)이시지?" 하고 장난하기도 했다. 단발머리에 안경 쓴 아내의 얼굴도 종종 그려 넣었다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1916~2004) 여사는 원래 소설가 이상(1910~1937)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소설가가 폐결핵으로 요절한 뒤 1944년에 화가와 재혼했다. 지인들은 그녀가 도도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도 그녀는 김환기를 위해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1974년 남편이 타계하자 사재를 털어 1992년 서울 부암동에 그를 기리는 미술관을 지었다.

김환기는 달항아리 마니아였다. 작업실 한쪽 벽을 항아리로 꽉 채웠고, 사진을 찍을 때도 항아리 곁에 앉았다. 그는 항아리를 닮은 '곡선'으로 자연을 그렸다. 서양의 붓과 물감으로 한국의 정신과 풍류를 표현했다. 그는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미술의 중심지는 뉴욕"이라며 뉴욕에 눌러앉아 그곳에서 타계했다. (02)391-77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