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항아리의 '손맛', 밀라노를 사로잡다

  • 밀라노=박세미 기자

입력 : 2013.04.15 03:04 | 수정 : 2013.04.21 12:04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한국 공예展… 관람객 11만명 넘어]
가마에 굽고 물레 돌려 거친 線, 천연 옻칠로 나타낸 자연의 色
"불완전한 듯 자연스러운 매력… 디자인의 뿌리는 공예, 그 손맛"

잔주름 가득한 손등, 마디는 울퉁불퉁 끝은 새까맣고 뭉툭한 손가락…. 지난 9~14일 열린 세계 최대 디자인 축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선 '험한 손'이 화제였다. 수십 년간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온 한국 공예 장인 16명이 손으로 빚은 작품 11점을 선보인 것이다. 올해로 52회째인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는 총 2500여 전시 업체와 관람객 30만명이 찾는 국제적 행사. 이 박람회에서 한국 공예 작품이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신 트렌드 집결지에서 우리 장인들은 '디자인의 뿌리는 공예', 그리고 밑바탕엔 '손'이 있음을 환기했다.

집 앞마당에서 키우는 참닥나무를 베고 찐 다음, 껍질을 벗기고 있는 한지장 김삼식씨의 거친 손. 전시장에서는 이런 장인들의 손과 작업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줘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사진가 박우진
문화부가 주최하고 디자이너 손혜원씨가 총감독을 맡아 밀라노 트리엔날레(Triennale) 디자인 뮤지엄에서 선보인 전시 제목은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法古創新·Constancy & Change)'. 13일(현지 시각)까지 무려 11만여명이 '한국관'을 찾았다. 현지 관람객들은 "일본 공예가 숨 막힐 듯한 완벽함이 특징이라면, 한국 공예는 선(線)과 색(色)의 불완전한 듯 자연스러움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손맛, 선(線)

한국관 안에 놓인 스툴(등받이 없는 의자) 9개. 언뜻 질감이 거친 노출 콘크리트 같아 보였지만 백자(白磁)였다. 도예가 김익영씨는 '오각의 변주'라는 이름으로 비대칭적이지만 단단한 강도를 자랑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도예가 권대섭씨의 백자 '달항아리' 역시 자세히 보면 주둥이 부분이 비틀어져있고 유약색 또한 균질하지 않다. 두 작품 모두 가마에 굽고 물레에 돌리는 자연적 손맛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영희·김인자·정영자·조효순씨의 의상 '선+선+선'은 아홉 겹의 반투명 헝겊 한복을 깨끼 바느질(안감·겉감을 세 번 바느질하는 것) 기법으로 마감해 손으로 살짝 만진 듯한 구겨짐이 드러난다.

김삼식·김연진씨의 한지등(사진 왼쪽)과 정해조씨의 건칠 항아리 ‘적광률’. /사진가 박우진
두 번째 손맛, 색(色)

천연 옻칠은 인공 안료의 홍수 속에 단연 빛을 발했다. 가장 주목받은 정해조씨의 건칠 항아리 '적광률'은 이탈리아인이 선호하는 강렬한 붉은 색이 특징. 장인은 "삼베를 20장씩 붙인 뒤 붉은색 광물성 안료와 노란색 광물성 안료를 나만의 비율로 '적당히' 섞어 칠한 것"이라며 "그 어떤 인공 물감도 내 머릿속의 자연 배합만큼 매혹적이지 않다"고 자부했다. 김상수씨가 옻칠하고 장경춘씨가 형태를 짠 목재 수납장 '옻칠 콘솔'의 색감도 이런 식으로 태어났다. 은입사장(匠) 홍정실씨가 만든 향로 '여광'의 갈색 옻칠은 마치 매끄러운 나무 표면 같고, 황을순씨의 궁중 채화(綵華) '성수(聖樹)'는 천연 염색의 힘을 빌려 꽃보다 더 꽃 같은 가화(假花)가 됐다.

(사진 위 왼쪽)서영희·김인자·정영자·조효순씨의 한복 ‘선+선+선’, (사진 위 오른쪽)정해조씨의 건칠 찻잔 ‘오방색광률’, (사진 아래)김익영씨의 백자 스툴 ‘오각의 변주’ 시리즈.
"한국 IT 디자인 뿌리를 알겠다"

한국 공예의 손맛은 "이질적이지만 매우 독특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같은 전시관 내 '대만관''덴마크관'이 극단적 현대성을 바탕으로 한 것과 대조적. "한국 IT 디자인이 왜 강세인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관람객 카테리나 갈리지올리) "어떤 모던 디자이너의 작업보다 수퍼 모던하다"(디자인 평론가 크리스티나 모로치)는 반응도 나왔다.

총감독 손혜원씨는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서 전시 의뢰가 들어왔다"며 "향후 5년간 밀라노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통 공예를 선보이되, '차' '음식' 등의 구체적 주제로 좁혀가고 싶다"고 했다.